현대 신형 제네시스가 예상보다 잘 팔리고 있다. 제네시스는 지난 9월까지 국내에서 월 2000대 이상 판매되고 있다. 현대차가 출시 당시 예상했던 물량보다 33% 정도 더 많다. 게다가 개발이 끝난 것으로 알려진 제네시스 디젤은 아직 판매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제네시스는 5~6년의 제품 수명 동안 1세대보다 훨씬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번 2세대 제네시스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현대차 그룹은 향후 2~3년 동안 현대와 기아 브랜드로 여러 후륜구동(FR) 차종을 선보일 계획이다.

1세대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을 최우선으로 두고 개발되었다. 미국 디자인센터에서 미국인 디자이너가 주도적으로 그렸다. 반면 2세대는 유럽차에게 급속히 잠식당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 초점을 맞췄다. 디자인을 비롯한 전체적인 개발 방향을 유럽풍으로 정한 경영진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다.

제네시스의 성공은 현대차 그룹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지난 10월 파리모터쇼에서 기아차 경영진이 201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선 보였던 GT 컨셉트 카를 양산하겠다고 밝힌 배경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2016년 하반기에 GT를 출시할 예정이다. 그러면 현대기아차를 합쳐 FR 네 차종으로 시장을 공략하게 된다.

나아가 GT 같은 변종은 수익률이 높다. 피아트 그룹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에 의하면 완전히 새로운 차종을 개발할 때 디자인에서 양산까지는 1조 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이 플랫폼을 공유하는 차종을 개발할 경우 비용은 3000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신형 제네시스에서 시작되는 현대기아차의 FR 개발전략은 2016년 초 출시가 예상되는 에쿠스 3세대를 거쳐 2016년 하반기 또는 2017년에 예상되는 기아차 GT에 이르면서 FR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점진적으로 좋아지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2015년 하반기 또는 2016년 상반기 출시가 예상되는 3세대 에쿠스는 제네시스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다. 2012년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이 된 피터 슈라이어 사장이 디자인한 첫 FR 차종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기아차 K9을 그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아는 바에 따르면 K5나 스포티지 R처럼 100% 그의 디자인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K9의 판매실패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대차 디자인 총괄까지 겸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슈라이어라지만 실패의 책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현대차 그룹의 사풍을 감안하면 K9에 그의 책임이 적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K9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에쿠스에서 그의 디자인 실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3세대 에쿠스 또한 제네시스처럼 큰 그릴, 쿠페와 같은 유려한 형상 등 유럽적인 디자인요소가 다수 채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륜구동 또한 옵션으로 마련한다. 뿐만 아니라 4도어 세단 이외에 파나메라 같은 5도어 해치백 변종을 출시할 계획도 있다.

파리모터쇼에 나온 인피니티 Q80을 보면 알 수 있듯 최근 많은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투어 시도하고 있는 형태의 고급차다. 다만 에쿠스 디자인 테마를 공유하는 파생형일지, 에쿠스와 이름부터 다른 별도의 차종이 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기아 GT 출시 소식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상되는 바였다. K9의 실패(특히 지금 미국에서 저조한 판매량)가 기아차의 후륜구동 개발 시도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GT가 파나메라 또는 아우디 A7처럼 4도어 쿠페 형상으로 선보인다면 제네시스와 판매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입차 시장 방어막도 한층 촘촘히 짤 수 있게 된다.

GT 디자인엔 슈라지어 사장의 역할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아직 선보이지 않은 V6 3.3L 터보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적용될 지도 관심을 모은다. 이 엔진은 아직까지는 말로만 전해진다. 개발완료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 상태다. 그러나 컨셉트 카의 제원대로라면 지금의 3.3L는 물론 3.8L 엔진까지 대체할 만큼 높은 출력이 기대된다.

현대기아차는 벨로스터를 시작으로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여러 차종에 얹을 전망이었다. 그러나 기술제휴선인 독일 쉐플러의 LuK와 문제가 생겨 그 이상 진척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올해 파리모터쇼에서 내년부터 소형 차종부터 듀얼 클러치를 적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허용 토크용량만 키울 수 있다면 GT 양산형에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8단 자동변속기를 쓰는 제네시스와 또 다른 운동성능을 꾀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상호 판매 간섭이 나름 최소화된 FR 차종들을 4개 이상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현대차는 C세그먼트의 FR 차종을 출시할 수 있다. 이 같은 소문을 뒷받침하듯 이번 파리모터쇼에서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재규어 XE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브랜드의 혈통 부재 및 고성능 차종 개발능력 부족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대기아차는 애스턴마틴이나 로터스 같은 업체를 인수하지 않고서는 약 30년간 준(準) 고급차 브랜드로 평가받는 혼다의 어큐라, 닛산의 인피니티, 도요타의 렉서스조차 넘보기 어렵다.

이 세 브랜드는 현대차보다 훨씬 앞서 고급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브랜드 역사의 한계 및 고급의 정의를 망각한 경영진의 실책으로 지금껏 미국 이외의 시장에선 대접 못 받는 브랜드로 고착화되었다. 반면 인도와 중국에서 현대차보다 시장 점유율이 낮은 타타와 길리는 각각 재규어-랜드로버 및 볼보를 인수해 고급차 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 중이다.

고급차 시장이 좋은 제품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사례다. 누가 맥도널드에서 69.99달러짜리 고급스테이크를 시키겠는가와 같은 얘기이다. 불행 중 다행히 애스턴마틴과 로터스는 둘 다 현재 경영 상황이 안 좋다. 특히 애스턴마틴의 지분 5%를 지닌 다임러는 최근 애스턴마틴을 인수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난 두 브랜드 모두 현대기아차가 인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터스는 고성능 차종 개발능력 부재에 대응할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참고로 이번 제네시스의 서스펜션은 로터스 엔지니어들이 튜닝을 담당했다. 현대기아차가 FR 차종 개발에 가속을 붙이는 건 소비자에게 고무적인 사실이다. 투자가들에게도 평균 단가의 인상을 고민하도 있다는 메시지로 들린다.

좀 더 효과적으로,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급증하고 있는 고급차 수요에 현대기아차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신흥시장 부자들이 고급차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고착화될 수록 '신흥' 고급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떨어지는 까닭이다. 국내도 비슷한 경우다.

현대기아차가 애스턴마틴과 로터스를 동시에 사들인다고 해도 2조원 남짓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이 시점에 삼성동 부지 인수하는데 10조 원을 덜컥 썼다. 투자가들에게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 미래의 성장성에 대한 심각하고 성숙한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자동차 업계에 길이 남을 이야깃거리일 것이다.

지금 시장은 현대기아차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FR차종의 개발 및 출시는 환영할 만 하다. 그러나 효과적인 고급차 시장 진입에 대한 고민과 움직임이 절실하다. 불과 2개월 남은 2014년을 넘어 2015년엔, 현대기아차가 스스로 내건 슬로건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