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 포르쉐가 2005년 국내에 정식 수입 법인이 생긴 지 8년 만에 지난달 처음 200대가 넘게 팔렸다. 한 대 가격이 보통 1억원, 비싼 모델은 2억원이 훌쩍 넘어간다는 점에서 한 달에 200대 판매량은 이례적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카이엔'과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 등 실용성을 높인 모델을 적기에 선보인 게 판매량 급증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소비자들의 수입차 소비 패턴이 점차 '하이퍼 럭셔리(일반 고급 브랜드를 뛰어 넘는)'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는데 따른 수혜를 포르쉐가 받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포르쉐 911 카레라 4S 카브리올레. /스투트가르트코리아 제공
포르쉐 911 카레라 4S 카브리올레. /스투트가르트코리아 제공


◆ 5월, 기아차 쏘울보다 많이 팔린 포르쉐

10일 포르쉐 공식 수입사인 스투트가르트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서 팔린 포르쉐는 총 214대로, 2005년 정식 수입 법인이 생긴 이후 처음 200대 판매를 돌파했다. 지난해와 2011년 국내서 팔린 포르쉐 자동차는 각각 1516대·1301대, 올해는 2000대 판매도 점쳐진다. 지난달 기아자동차(000270) (60,000원▼ 800 -1.32%)'쏘울'이 145대, 수입차 대중 브랜드인 닛산이 전 차종을 합쳐 212대 판매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판매량이다.

'드림 카'의 상징이던 포르쉐가 이처럼 대량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카이엔·파나메라 등 실용 모델의 판매량 증가가 가장 큰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달 판매량 214대 중 절반이 넘는 136대가 카이엔이었다. 카이엔은 포르쉐가 처음 선보인 SUV 모델로 스포츠카의 괴물 같은 주행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SUV 실용성까지 가미했다.

포르쉐 첫 SUV 카이엔. /스투트가르트코리아 제공
포르쉐 첫 SUV 카이엔. /스투트가르트코리아 제공

올해 초 국내에 출시된 '카이엔 S 디젤'과 '카이엔 터보 S'의 경우 최고 속도가 종전보다 시속 34㎞ 빨라진 252㎞/h, 최고 출력은 142마력이 높아진 382마력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대형 디젤 엔진과 8단 팁트로닉S 변속기가 맞물리면서 재빠른 주행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5.7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가격은 기존 포르쉐 스포츠카보다 비교적 '착해진' 8800만~1억5200만원. 여전히 범접하기 힘든 가격이지만, 포르쉐가 어릴 적 꿈이었던 소비자에게 '그림의 떡' 수준은 아니다.

포르쉐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 /스투트가르트코리아 제공
포르쉐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 /스투트가르트코리아 제공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 역시 포르쉐가 갖고 싶지만 좁은 실내와 부족한 수납공간 때문에 망설였던 가장(家長)들에게 적합한 해답이다. 파나메라 역시 1억2150만~2억7200만원으로, 기존 포르쉐 스포츠카 가격에서 크게 오르지 않았다. 파나메라의 지난달 판매량은 전체의 14%인 30대였다.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기존 수입차 브랜드들은 일반 세단이 주력인데 비해 포르쉐는 스포츠카에서 시작해 SUV·세단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고급스런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가격은 내리고, 유통망을 확충한 게 포르쉐의 성공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 '강남 아반떼'에 싫증난 소비자 몰려

기존 독일 3사(BMW·메르세데스-벤츠·아우디)에 싫증이 난 소비자들이 이들을 벗어난 브랜드를 찾기 시작한 것도 포르쉐 판매에 일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 3사는 여전히 높은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판매량 탓에 최고급 소비층에는 외면을 받고 있다. BMW '3시리즈'나 벤츠 'C클래스'의 경우 '강남 아반떼'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이제 거리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다. BMW는 지난달에도 2663대, 벤츠도 1995대나 팔렸다. BMW의 판매실적은 현대자동차(005380) (220,500원▼ 4,500 -2.00%)에쿠스(1057대)·제네시스(1154대)를 합친 것 보다 훨씬 많다.

랜드로버가 생산한 레인지로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랜드로버가 생산한 레인지로버.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독일 3사가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포르쉐·재규어·마세라티 등 희소성 높은 브랜드들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재규어의 지난달 판매량은 12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81대) 대비 50%나 늘었다. 마세라티 역시 지난해 연간 60여대를 팔았지만, 올해는 120대 넘게 판매한다는 목표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과거 도요타 렉서스에서 시작한 '강남 OOO'라는 명성을 독일차가 이어 받았다가 이제는 다른 브랜드로 옮겨 가고 있다"며 "기존 럭셔리 브랜드 SUV를 타던 소비층이 옮겨 갈 곳은 카이엔·레인지로버 등 하이버 럭셔리 SUV뿐"이라고 말했다.

◆ 법인차 가장한 탈세 의혹도

한편 법인 명의로 고가 자동차를 구입해 세금을 탈루하기 위해 포르쉐를 구입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이 포르쉐 고객 중 개인은 46명, 법인은 168명이나 됐다.

법인 고객 비율이 높기로 유명한 BMW·벤츠·아우디도 법인 고객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포르쉐는 법인 고객이 4배에 육박해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원사 중 가장 높다. 개인이 쓸 자동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세금을 절감하는 '세(稅) 테크' 기법은 전문직·고소득자 사이에서는 이미 일반화 돼 있어, 포르쉐가 이 같은 목적에 이용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재정위기에 시달리던 이탈리아는 2011년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최고급 스키 리조트에 주차된 251대의 수퍼카 차량 소유주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우리나라도 민홍철 민주통합당 의원이 승용차의 배기량이 2000cc 미만이면 현재와 같이 그 취득가액 또는 리스(렌탈 포함)가액의 전액을 필요경비에 산입할 수 있도록 하되, 2000cc 이상이면 제한을 두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포르쉐 등 최고급 자동차의 법인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며 "현재의 판매량은 법안 통과 전에 수요가 몰리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