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 AT에 터보 엔진으로 무장한 비스토는 3단 AT를 얹은 구형 비스토를 단숨에 힘으로 제압했다. 터보 인터쿨러로 출력을 높인 798cc 70마력 엔진은 작은 차체를 시속 140km까지 스트레스 없이 몰아치고 핸들링은 참고모델인 구형 마티즈와 비스토를 포함해 4대 중 최고. 유일한 단점인 고속의 소음문제는 수동 5단 기어를 얹은 아토스 터보를 타면 완전히 사라진다. 터보+MT 매칭으로 작은 차의 운전재미를 극치까지 보여준 아토스 터보는 큰 키 때문에 고속에서 약간 휘청이는 느낌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힘 부족 문제를 해결하니 넓은 실내공간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같은 MT를 단 구형 마티즈보다도 운동성능과 소음, 재미 면에서 모두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였다 글·박희선 기자(vada@carlife.net) 사진·전용근 기자(dragon@carlife.net)

터보엔진으로 더욱 힘이 세진 아토스와 비스토를 연속 시승했다. 뒤의 차는 참고모델로 가져간 데뷔 초기의 마티즈와 비스토 일반 엔진차

비스토의 실내와 시트 색깔. 젊고 감각적인 부위기다

타이어는 175/60R 13 사이즈로 예전보다 커졌다

2001년형 비스토의 앞모습. 커진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네트의 인터쿨러 구멍이 매운고추 인상을 주고, 앞뒤 범퍼에 고무몰딩 처리를 한것도 깜찍하면서 옹골찬

비스토 옆모습

비스토 뒷 모습

비스토 터보와 일반 엔진차가 함께 달리는 모습. 터보차는 예전 일반 엔진차의 답답하던 출발가속감이 완전히 사라졌고 소음도 한결 줄었다

트랜스 미션으로 2001년형인 터보는 자동4단 얹었다

99식인 비스토 일반 엔진차는 자동 3단을 얹었다

비스토 터보. 798CC의 같은 배기량이지만 터보는 최고출력이 70마력으로 일반 엔진의 54마력보다 훨씬 높다

일반 엔진차의 엔진룸

아토스의 실내

시트 색깔은 비스토보다 고급스럽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타이어는 비스토 터보와 같은 175/60R 13 사이즈로 모델별로 휠 디자인만 다르다

2001년형 아토스의 앞 모습. 검은색 투톤컬러 탓인지 비스토보다는 더 무게잡은 인상을 주지만 키가 12cm 더 커서 실용적이다

옆모습

뒷모습

아토스 터보와 구형 마티즈가 함께 달렸다

똑같이 수동 5단 트랜스미션을 엊은 두 차는 AT차였던 비스토 두 모델보다 운전재미가 큰 편인데, 속도경쟁에서는 힘이 더욱 세진 아토스를 마티즈가 따라오지

마티즈

아토스 터보의 엔진룸. 직렬 4기통 798cc 터보 인터쿨러 70마력 엔진

마티즈의 엔진룸. 직렬 3기통 796cc 52마력을 얹고 있다

97년 가을 아토스가 처음 나왔을 때 이제 국내에도 경차 매니아가 많아지겠거니 낙관했었다. 이렇게 예쁜 모양에, 단순히 작은 차에 그치지 않고 실내도 미니밴처럼 쓰임새 좋게 꾸민 차가 안 팔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현실이 되듯 다음해 경쟁차 마티즈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경차시장은 한때 자동차 내수판매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커졌다. 그러나 몇 해를 못 넘겨 중형 세단과 LPG 미니밴 등 덩치 큰 차들에 다시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어준 것을 보면, 그때의 경차 붐은 단순히 IMF 특수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토스와 비스토 터보의 시승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는 왜 경차가 인기 없는가`를 고민해 본다. 곰곰이 생각하니 나에게도 2년 전 차를 바꿀 때 경차를 택하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었다. 차체와 엔진 크기의 부조화로 가중되는 운전 스트레스다. 승용차의 미니밴화라는 실용 노선을 걸으면서 티코보다 덩치가 커진 요즘 경차들에게 정부 규제의 800cc 엔진은 턱없이 부족하다. 작은 차란 자고로 생쥐처럼 빠르고 가볍게 도로를 뚫고 달리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아토스와 마티즈를 그렇게 몰다가는 엔진에 무리를 줄 뿐 아니라 찢어지는 소음과 나쁜 연비까지 각오해야 한다.

메이커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안다. 아토스, 비스토의 터보 모델 출시가 바로 그 증거. 마티즈에 비해 크고 무거운 차체로 동력성능 면에서 혹평을 받아온 현대-기아의 쌍둥이 경차는 지난해 먼저 자동 변속기를 3단에서 4단으로 바꿔 다는 것으로 운전 스트레스 줄이기에 나섰다. 그러나 `힘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평과 함께 판매에서 별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곧 참신한 얼굴로 페이스 리프트된 마티즈Ⅱ에 가려 그나마의 노력도 빛을 잃었다.
이번 아토스, 비스토의 터보 엔진 달기는 어쩌면 현대-기아가 경차시장에 던지는 마지막 승부수일지 모른다. 엔진을 아예 바꿔 달지 않고서야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이상의 복안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말 필요 없이 기대되는 터보 경차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기로 한다. 엠블럼만 다른 것을 달았을 뿐 사실상 쌍둥이차인 아토스와 비스토를 같은 날 빌리고, 터보 엔진의 맛을 똑똑히 느끼기 위해 구형 마티즈와 비스토를 참고 모델로 가져갔다. 아토스와 비스토 터보는 각각 고급형인 유로파, 큐 모델이고 구형 마티즈와 비스토는 각각 98년, 99년식으로 데뷔 초기 모델들이다. 아토스 터보와 마티즈가 수동기어, 비스토 터보와 구형이 자동기어를 달아 각각 맞비교해 보기도 좋았다.

비스토 터보 AT
속시원한 가속, 그러나 소음문제는 남았다

경차 네 대를 줄지어 세워놓고 처음 골라잡은 차는 비스토 터보다. 검은색 투톤 컬러로, 생긴 것과 안 어울리게 무게 잡는 분위기(?)인 아토스 시승차보다는 밝고 앙증맞은 모습의 비스토 터보가 마음에 먼저 와 닿았고, MT차보다는 AT차를 먼저 타는 것이 두 차를 모두 재미있게 타는 요령이란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거꾸로 타면 대체로 AT차를 시시하게 느끼게 된다).
비스토는 12cm 낮은 키와 뒷모습 말고는 아토스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는데, 2001년 모델 이어를 기해 새로 바뀐 라디에이터 그릴이 보네트의 인터쿨러 구멍과 어울려 작지만 만만히 볼 수 없는 `매운 고추` 인상을 준다. 아토스와 달리 앞뒤 범퍼에 고무 몰딩 처리를 한 것도 깜찍하면서 옹골찬 경차 이미지에 딱 어울린다.운전석에 올라타니 오랜만에 경차를 시승하는 감회가 새롭다. 작은 차에 높이 앉는 운전자세, 한 눈에 옹기종기 들어오는 예쁜 디자인의 실내 장비들은 막 걸음마를 뗀 아이들이 장난감 차에 올라탔을 때 처음 갖는 흥분감을 그대로 전해주는 듯하다.
4단 AT에 터보 엔진으로 무장한 비스토는, 그러나 움직임은 `장난`이 아니다. 798cc 기본 엔진에 터보 인터쿨러를 얹어 최고출력을 54마력에서 70마력으로 16마력이나 올렸으니 몸으로 느껴지는 가속감도 상당하다. 우선 출발할 때 굼뜨게 반응하던 옛날 그 둔탁한 느낌이 없어졌다. 엔진회전수를 숨가쁘게 올리며 마음보다 앞서 튀어나가는 차는 속도조절이 자유롭고, 무엇보다 차체가 작고 가벼워 추월이 손쉽다.

도로 위의 큰 차들을 비집고 달리면서 드는 생각 하나. 사람들은 자기 몸의 다이어트는 추구하면서 왜 자동차는 자꾸 비대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작은 차체는 `펀 투 드라이브(fun to drive)`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고성능 스포츠카들 말고 티코나 프라이드 같은 작고 힘좋은 차를 탈 때 느껴지는 운전재미가 따로 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작은 차를 타면 초라해 보인다고 먼저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기분으로는 경차의 진정한 재미를 즐길 수 없다.

자동변속기를 얹은 비스토 터보는 엔진소음이 작은 편이 아니다. 액셀 페달을 밝는 깊이만큼 `쉭쉭∼` 반응하는 소리가 커서 계기판에 없는 타코미터가 자꾸 궁금해진다. 요즘 많은 경차 오너들이 애프터 마켓에서 타코미터를 구해 달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한편 시속 100km를 넘어가면서는 엔진소리가 잦아드는 반면 바람소리가 점점 커져 그쪽으로 신경이 옮겨간다. 이런 소음문제는 아토스를 제외한 구형 차들에서 더 크게 감지되었는데, 운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차의 운전 불안이 상당 부분 여기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소음만 접어두면 비스토 터보에서 더 이상의 불만이 없다. 최고시속을 140km까지 내봤지만 어느 순간에도 힘 부족을 느낄 새 없이 씩씩하게 달렸고, 특히 시속 100km 정도로 적당히 굽이진 국도를 휘감아 달리는 재미가 아주 별났다. 175/60R 13 사이즈로 폭을 넓힌 타이어는 차체를 잘 지탱하고, 묵직한 스티어링 휠은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는 듯하며, 마티즈보다 껑충한 키도 전혀 불안 요소가 되지 못한다. 핸들링 감각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티즈보다 오히려 나은 느낌이다.

● 신구 대결: 비스토 터보 AT vs 구형 비스토 3단 AT
뒤이어 타본 구형 비스토는 정말 참고차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4만km를 달린 99년식 모델로 듀얼 에어백을 비롯한 너무 많은 고급장비를 달고 있어서인지, 출발부터 터보차보다 훨씬 무거운 느낌이고 속도 내기가 답답한 데다 그 이상으로 시끄러운 엔진 소음이 부담이다. 3단 AT를 얹은 초기 모델이어서 터보차에 단련된 나의 빠르고 깊숙한 발동작을 감당하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제법 얼르며 달리는 방법을 터득하니, 급동작에서 차체를 바로잡는 자세나 브레이킹 응답력 등 전체적인 움직임이 날쌘 터보차를 그대로 빼닮았다.

아토스 터보 MT
터보 엔진에 MT 매칭, 더 이상의 경쟁자는 없다

사실 비스토 터보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자제하고 싶었다. 말로 전하는 시승기는 늘 표현의 적절한 수위를 찾는 일이 중요하면서도 어려운데, 앞서 비스토를 너무 좋게 써 버리면 아토스 터보에 대해 할 말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운전을 직접 해본 뒤 이 날 시승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차는 수동기어를 단 아토스 터보였다. 운전석에 올라타 1단에서 2단으로 첫 변속을 하며 출발하는 순간, 언젠가 TV에서 `내 맘대로 되는 게 또 있네!` 하던, 어떤 인스턴트 커피 광고문구 한 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비스토 터보를 몰 때도 `아, 참 속시원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정말이지, 내 맘대로 되는 차가 여기 또 있었던 것이다.거의 같은 차체에 똑같은 메커니즘을 쓴 아토스와 비스토가 이렇듯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는 단 하나 수동과 자동 트랜스미션의 차이다. 기자는 종종 `AT의 무용론`을 주장하곤 하는데, 단순히 그것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적 손실(옵션값, 나쁜 연비 등)보다 그로 인한 성능 저하를 매우 아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외형 키우기를 중시하는 국산차들은 안 그래도 엔진 힘이 부족하다. 더구나 최소 사이즈의 보디에 딱 그 무게를 움직이는 데만 필요한 만큼의 엔진 힘, 가능한 한 가벼운 치장, 그래서 최대한 싼 값… 등으로 경제성을 추구해가는 소형차의 경우, AT 선택은 성능에 대한 손실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날 타본 아토스는 값비싼 고급 세단과 수입차들을 모두 아울러 내가 최근에 타봤던 차들 중 가장 큰 감동을 남겼다. 비스토 터보를 타면서 곱씹었던 `소형차 찬가`가 이 시점에서 극치를 이뤄야 하는데 표현할 재주가 없다. 변속감이 부드러운 수동 5단 기어를 손가락 몇 개로 요리조리 까딱이면서 마음대로 속도를 조절하는 재미가 아주 크다. 액셀과 브레이크 페달, 기어 조작에 따른 반응이 너무나 빠른 것이 놀랍고, 엔진소음도 딱 바라는 만큼이라 일부러 발바닥에 힘을 줬다 뺐다 하며 즐기게 된다, 그야말로 비스토 터보 AT에 그나마 남아 있던 불만을 일시에 씻어준 느낌이랄까?

98년 데뷔 때 많은 사람들이 아토스의 껑충한 키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SUV나 미니밴 등 키큰 차들에 많이 익숙해진 요즘에는 아토스 정도의 키에 어색해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비스토와 아토스 뒷좌석에 차례로 3명이 구겨 타보니 아토스는 높은 천장 덕분에 앉은 느낌이 한결 여유로운 것이 장점으로 다가온다(비록 세 명이 엉덩이를 꼭 붙이고 앉아야 할 만큼 폭은 좁았지만).

그러고 보니 나에겐 아토스의 큰 키가 싫었던 이유가 또 있었다. 큰 키가 곧 무게 상승으로 이어져 운전을 힘들게 하고, 연비를 나쁘게 하며, 코너에서 휘청이는 느낌을 준다는 것. 그런데 지금 타본 아토스 터보는 예전의 무게감을 전혀 느낄 수 없고, 제원상으로는 연비도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시속 100km 정도에서 몸을 크게 흔들어댈 때는 바람을 타고 조금 휘청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아 고속에서 트위스트 운전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성능 좋고 실내도 넓은 아토스 터보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로 핸들링이 더 좋은 비스토 터보에 MT를 달면 더 재미있는 운전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생긴다.

●라이벌 비교: 아토스 터보 MT vs 구형 마티즈 MT
아토스와 비교하기 위해 수동 기어를 얹은 구형 마티즈를 연달아 타봤다. 98년 초기 모델인 시승차는 이제 막 6만km를 넘기며 싱싱한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마티즈Ⅱ가 나온 지도 반년이 지났지만 구형 디자인도 여전히 예뻐 보인다. 묵직한 엔진음을 울리며 힘차게 가속하는 느낌은 역시 기본 엔진을 얹은 구형 비스토보다는 한 수 위. 이제 터보 엔진으로 더욱 강력해진 아토스와 같은 출발점에서 속도 경쟁을 하기는 힘들어졌지만, MT를 단 마티즈는 비스토 터보 AT와는 게임이 된다. 엔진음은 구형 비스토만큼 시끄럽지만 귀에는 덜 거슬리는 음질이고, 핸들링은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느낌. 또 MT의 변속감은 아토스가 훨씬 매끄럽다.결론
AT 빼기, 터보 더하기면 더 싸고 재미있게 운전할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아토스, 비스토의 터보 엔진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로써 현대-기아는 `경차의 운전 스트레스 줄이기`라는 참으로 힘겨웠던 과제를 드디어 해결한 느낌이다. 이제 국내 경차시장은 어쩔 수 없이 제2의 라이벌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지난해 성공적으로 페이스 리프트한 마티즈Ⅱ는 이들 터보 경차의 출현 앞에서 계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기아의 마케팅 담당자는 비스토 터보 모델의 20% 시장 점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도 마찬가지. 지금 가진 몫을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시장확대를 노린다는 뜻이다. 아토스와 비스토가 각각 목표치에 도달한다면 경쟁차 마티즈를 정상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IMF 특수 이후 다시 침체되었던 국내 경차시장의 제2 전성기도 기대해 봄직하다. 안 그래도 대우자동차 부도로 경기가 나빠진 요즘, 많은 운전자들이 값싸고 혜택 많은 경차에 다시금 눈길을 주고 있다.
아토스와 비스토 터보팩의 옵션값은 45만∼50만 원 정도다. 그리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운전 재미를 위해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