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카이딘 황제의 릉에 대해서 자세한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어떤 사료들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로

소개를 할까 합니다.


검색을 하다 보면 사학자들과 다양한 유투버들이

다양한 후에시를 소개하였지만 오늘 소개할

내용들은 국내에 처음 소개해 드릴 내용들이라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독특한 기분이 드실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은 카이딘 황제의 무덤이 실제로 있는 계성 전을

소개할 예정인데 이 무덤이 도굴이 되지 않은 사연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설하고, 카이딘 황제릉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이딘, 바이든 자꾸 헷갈리네요.


카이딘 황제가 묻혀있는 곳, 바로 계성 전입니다.

카이든 황제는 이 능을 짓기 위해 농민세를 30%

인상하여 농민들의 원성이 대단했습니다.

무려 11년에 걸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릉에는

농민들의 피땀 어린 세금이 묻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제 소개해 드렸던 계단은 정확한 사료에 의해

36 계단이 아닌, 37 계단임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티켓을 들고 맨 처음 올라오면서 세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던

계단은 127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자료들은 틀렸음을 알려드립니다.


전체적인 카이딘 황릉은 좌청룡, 우백호 형식으로

모든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풍수지리학적인 

위치를 고려하여 능의 위치를 잡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 배산임수를 고려해 무덤을 만드는 것은 공통사항이

아닌가 합니다.


어제, 소개를 해 드렸던 문무대신의 동상 크기는

실제 사람과 1:1의 비율로 제작이 되어

당시, 베트남인들의 체형을 쉽게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좌우 10명씩 총 20명의 문무대신과 말,코끼리

동상을 말합니다.


여기가 바로 카이딘 황제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사군자에 나오는 모든 것들이 집대성해 있으며

그 화려함은 곧, 카이든의 성격을 나타내는데

그만큼 개판 오 분 전 성격이 아닌가 합니다.


티엔딘 궁전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카이딘 왕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가장 독특한 디자인과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곳이며

궁전은 직사각형 모양이며 아래층에는 대리석이 늘어서 있으며

내부 전체가 도자기와 유리로 만든 부조로 장식되어 있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색조(Hue) 모자이크 예술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고, 한 유투버거 소주병과 맥주병을 깨트려

만든 릉이다라고 썸네일을 만들었던데

정말 어이상실이었습니다.


이 모든 유리와 도자기들을 수입해서 모자이크 형식으로

치장을 해서 누구나 보면 그 현란함과 화려함에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천장을 그리던 장인은 누워서 그리다가 너무 지루해

발로 그림을 그린 것이 나중에 들통이 나서 결국,

사형을 당했습니다.


카이딘 황제의 무덤은 여기 지하 18미터 아래에

묻혀있는데 도굴을 하려고 시도를 하면 이 능 자체가

전부 무너져 도굴이 불가능하여 도굴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동상의 무게만 해도 1톤입니다.


카이딘(Khai Dinh) 묘소에는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의 동상과

프랑스에서 주조된 동상 등 두 개의 왕 동상이 있습니다.

카이딘(Khai Dinh)은 프랑스인에게 자신의 초상화 조각상을

만들도록 의뢰한 최초의 베트남 왕이었습니다.

왕의 금도금 청동상은 1992년 정확히 1:1 비율로 주조되었습니다.


계성전은 5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에는 영묘를 지키는 군인들을 위한 방이 있고,

앞에는 카이탄 궁전이 있고, 중앙에는 왕의 동상인 부탄과

아래 무덤이 있습니다.

세 개의 중앙 공간은 도자기와 색유리로 만든

부조의 웅장함과 세련미로 놀랍기만 합니다.


마치, 공안 같은데 기념품을 파는데

일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데

저는, 모르고 찍고 나니 찍지 말라고 하네요.

못 찍게 하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네요.

시설물 관리와 기념품을 파는 직원입니다.


카이딘 왕이 한 업적 중 하나가 과거급제 시험을

폐지한 게 유일한 업적이라고 합니다.


당시, 사용했던 화승총입니다.

베트남은 정말 유물 관리는  안 하는 편입니다.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의식이나

유물에 관한 인식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와서 " 이건 정말 중요한 거야" 

그러면 그제야 깔짝 거리면서 유리 케이스에 넣어

보관하는 수준입니다.


응우엔 왕조의 12대 왕인 카이딘 왕은 31세에 왕에 올랐으나.

마약에 취한  동성애자였으며 방탕한 생활을 하던 카이딘 왕은

결국, 폐결핵에 걸려 40세에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런 걸 보고 배운 아들인, 바우다이 왕도 마찬가지로

방탕한 생활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후에(Hue)에 있는 카이딘(Khai Dinh) 무덤의 건축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