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중고차 가격 1300만 원에 수리비가 1500만 원.’ 최근 오래된 중고 수입차를 구입했다가 엄청난 수리비로 낭패를 보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가 22만 대에 이르면서 중고 수입차 시장도 급격하게 커져 저렴한 가격에 매물로 나오는 차들이 늘고 있다. 생산된 지 10년 정도 지난 독일산 고급 수입차들의 시세는 1000만∼2000만 원으로 국산 준중형급 새 차 수준. 하지만 싼 가격에 수입차를 경험해 보기 위해 덜컥 구입했다가 차 가격 이상으로 수리비를 쓰고 후회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 수백만 원 짜리 부품도

서모(37) 씨는 최근 1995년식 벤츠 S320을 1400만 원에 구입했다.

구입 당시에는 운행에 지장이 없었지만 2개월 정도 지나자 변속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400만 원을 들여 수리를 해야 했다.
그 뒤에도 서스펜션(현가장치)과 엔진 부속품 등을 잇달아 교체하면서 수리비는 어느새 1000만 원에 육박했다.

최모(42)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최 씨는 1997년식 BMW 528i를 1년 전에 1300만 원에 구입했는데 지금까지 들어간 수리비만 1500만 원이 넘었다.

계기반과 히터 등 사소한 것들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더니 엔진과 변속기 등 비싼 부품까지 고장이 나 하나 둘씩 수리하다 보니 수리비가 차 가격을 넘어버렸다.

미국산 차는 더 심하다. 10년 가까이 지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산 차들은 중고차 시세가 500만∼1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수리비는 BMW와 벤츠 등 독일산 차종 못지않게 비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장이 나더라도 아예 운행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리를 하지 않고 타는 운전자가 많아 안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최 씨는 “국산 준중형차 가격에 수입차를 몰 수 있다는 생각에 구입을 한 것이 큰 착오였다”고 말했다.

○ 내구성에 대한 환상 버려야

중고 수입차 구입자들은 수리비뿐만 아니라 수리 과정에서도 적잖게 고통을 받고 있다. 오래된 차들은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일주일은 예사고 길게는 1개월 넘게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정식 딜러 권한이 없는 일반 수입업자들이 들여온 차들은 수입차 서비스센터에서 차별 대우를 받기도 한다. 수리비를 아끼려고 기술 수준이 낮은 일부 정비업소를 찾았다가 제대로 수리가 되지 않아 돈만 날리는 사례도 많다.

정비 전문가들은 “수입차는 10년 넘게 타도 고장이 잘 나지 않는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무모하게 중고차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다”고 말한다.

수입차 정비 전문가 장경필(35) 씨는 “수입차의 내구성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서스펜션 부품과 전기 부품 등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고차 딜러 김모(32) 씨는 “잘 구입하면 몇 년간 수리 없이 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꼼꼼한 사전 점검이 중요하다”며 “저가의 수입차를 구입한 뒤 고장이 나기 시작하면 손해를 보더라도 싼 가격에 빨리 파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충고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