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超)고유가시대가 도래하면서 연비 좋은 친환경차 하이브리드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요즘 자동차업계의 화두는 단연 하이브리드카 경쟁이다. 누가 더 연비 좋고 값싼 하이브리드카를 먼저 내놓느냐에 따라 자동차시장의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소차도 개발되고 있지만 하이브리드카에 비해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현재 국내에서 시판 중인 하이브리드카는 모두 일본산. 그러나 현대·기아차 등 한국 업체도 일본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이용해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게 기본 원리다. 내연기관은 보통 저속 구간이나 가속 구간에서 효율이 좋지 않은데, 이때 전기모터의 힘을 이용해 전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배터리는 감속 구간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회수해 저장하고, 정차 시에는 아예 엔진을 꺼버리는 등 에너지의 낭비를 최소화한다.

한양대 이창식(기계공학부) 교수는 “최적의 친환경 차량은 전기차지만 내연기관의 장점을 따라갈 수 없다”며 “현재 내연기관의 드라이빙 능력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하이브리드카가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북미시장에서 하이브리드카의 점유율은 2.6% 정도. 5년 뒤에는 점유율이 3배 이상으로 높아지리라 점쳐진다.

◇하이브리드카의 원조, 일본=지난달 중순 방한한 도요타의 수석엔지니어 요시히코 가나모리는 “가솔린 모델에 비해 배 이상 효율을 가진 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 밝혔다.

도요타는 국내에 이미 출시한 렉서스 3개 모델 이외 내년 하반기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할 방침이다. 세계 첫 상용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90%를 석권하고 있다.

요시히코는 “풀(Full) 하이브리드인 도요타의 시스템이 두 개의 모터를 장착하고 있기 때문에 한 개의 모터를 장착한 혼다에 비해 효율이 높다”고 주장했다. 도요타 시스템은 내연기관의 도움 없이 모터만으로 차를 움직일 수 있는 반면 혼다의 것은 출발 또는 가속 때 내연기관을 도와주는 역할에 그친다. ‘마일드(Mild) 하이브리드’로 불리는 혼다 시스템이 소형차에서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이유다.

도요타는 2010년부터 하이브리드카 연 100만 대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내년엔 3세대 프리우스와 300만 엔대 캠리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혼다는 내년 초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전용차를 출시키로 했다.

◇국내 기술도 급성장=현대·기아차는 1995년 하이브리드카 연구를 시작해 2004년 클릭 하이브리드 50대를 정부에 공급했다. 이후 프라이드와 베르나 하이브리드를 개발해 올해까지 모두 2400여 대를 정부기관에 납품했다.

다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현대·기아차는 액화석유가스(LPG) 엔진에 혼다 방식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접목한 아반떼 하이브리드를 내년 7월 출시키로 했다. 1년에 2만㎞를 달린다고 가정했을 때 가솔린 엔진은 280만원의 유류비가 들지만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120만원 수준인 것으로 계산됐다.

국내 기술의 강점은 리튬 배터리에 있다. 니켈-메탈 배터리는 부피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가볍고 충전 용량이 큰 리튬 배터리로 옮겨가는 게 요즘 추세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는 폭발 위험성이 커 웬만한 기술력 없이는 차량용으로 개발하기 힘들다. 현대·기아차는 LG화학과 함께 폭발 위험성이 낮은 리튬폴리머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고, 내년 시판되는 차량에 탑재하기로 했다. 이 차량에 실리는 부품은 100% 국산이다.

현대·기아차는 2010년 독자 개발한 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쏘나타급 이상에 탑재해 북미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모터를 하나만 쓰더라도 동력 전달에 전혀 문제가 없는 방법을 찾아냈다. 연비 개선 효과가 50∼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터를 하나만 쓰고 부피가 작은 리튬 배터리를 사용할 계획이어서 공간활용 면에서도 도요타에 앞선다는 평이다.

쌍용자동차는 강점을 지닌 디젤엔진의 연비를 30% 이상 추가로 향상시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디젤-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하이브리드카 개발 이끌어온 현대차 양웅철 부사장
“도요타와 달리 모터 1개로 구동
재료비 20~30% 절감할 수 있어”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가 시장에 나온 게 1997년. 현대차의 아반떼 하이브리드가 내년에 시판되니까, 양사의 기술격차가 12년인지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개발책임자에게 물었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의 양웅철(54·사진) 부사장이다. 대답은 단호하게 “노(No)”였다. 출발은 늦었지만 어느 정도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했고, 세계적 수준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양 부사장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 UC(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포드자동차연구소 등에서 18년간 일한 뒤 2004년 현대·기아차의 연구개발총괄본부 전자개발센터장으로 스카우트됐다. 환경기술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 기술의 자랑은.

“풀 하이브리드로서 가장 효율적이고 간단한 시스템인 병렬형에서는 엔진과 모터 사이에서 클러치가 접합을 제어한다. 예전에는 이 제어에 수 초가 걸렸는데, 도요타는 모터 2개를 이용한 기계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우회했다. 우리는 향상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이 시간을 0.6초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모터 하나로 모든 게 가능해졌다. 그 때문에 재료비를 도요타에 비해 20∼30% 정도 아낄 수 있다.”

-도요타의 특허권에 저촉되지 않는가.

“우리의 접합 제어기술은 도요타 시스템과 전혀 별개다. 소프트웨어 기술 면에서 우리가 앞선 것인데,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현재는 도요타의 기술이 전 세계를 리드하고 있지만, 우리 기술이 차기 시스템이 될 것이다. ”

-앞으로 상품화 전략은.

“우리 시스템은 경쟁사보다 구조가 간단한 것이 장점이다. 따라서 각 차량에 점차 적용을 확대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으며, 판매 대수가 증가하면 가격경쟁력도 생길 것이다.”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하이브리드카는 여전히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 친환경차 보급을 위해 소비자가 구매할 때 혜택을 줘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리튬 배터리와 같은 신기술로 무장한 하이브리드카를 내놓게 되면 전 세계 소비자들이 현대·기아차의 기술력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반떼 하이브리드의 출시 시기를 내년 10월에서 7월로 앞당긴 배경은.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올 3월 본사 경영진과 함께 연구소를 전격 방문해 재경과 구매 등 전 사업부문이 협조해 하이브리드카의 출시를 조금이라도 앞당기라고 지시했다.”

중앙일보 / 글=심재우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