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은 아시다시피 유일한 박사가 만든거죠.


첫째는 다들 아시고 존경하는 유일한 박사죠.

기업을 물러주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핏줄은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수 있어서 모두 해고하였죠. 


이때, 아들과 셋째 동생은 유일한 박사를 상대로 소송을 겁니다.

퇴직금이 부당하게 많다 하여 반환소송을 걸었죠.

일부가 아닌 퇴직금 전액 반환 소송...


둘째는 민족문제 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도 실린 유명한입니다.

창씨 개명을 해서 "야나기하라 히로시"


이 자는 국방 헌금 1만원을 종로 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헌납, 그 뒤에는 유한 애국기 제작비용 5만3천원을 헌납하는 등

친일 매국행위에 앞장 섭니다.


유일한 박사와 셋째 동생인 유특한씨는 야나기하라 히로시와 절연을 선언한 후, 51년 야나기하라 히로시가 해상 조난 사고로 죽을 때까지 연을 끊고 지냅니다.

자손으로는 유승호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있죠.


셋째인 유특한 사장은 유한무역주식회사 사장이었는데, 이를 유한산업주식회사로 변경한 후, 다시 유유제약으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유유제약입니다.

형인 유일한 박사가 동생한테도 전문 경영인한테 회사를 넘기라고 충고하자, 자기는 형님보다는 그릇이 작다고 하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죠.


유유제약의 안양공장은 건축가 김중업씨의 작품으로 공장을 건축가한테 의뢰하는 높은 안목을 가진 분이었죠. 

지금 안양공장은 박물관으로 활용중입니다.


80년대에는 기업별로 전대머리가 걷던 선거자금을 아예 내지 않았습니다.

국제그룹처럼 3개월 약속어음으로 낸 것이 아니라 아예 안 냈죠.

뒤끝있는 전대머리가 국세청에 불시 세무조사를 시켰으나, 털어서 먼지가 안나는 이상한 기업이라는 보고를 받고 제 풀에 지쳤죠.


유일한 박사도 총독부-이승만-다까끼한테 순차적으로 세무조사 협박 및 특별세무조사를 당했는데, 그때도 털어서 먼지가 안 났다고 합니다

다만 이승만은 세무조사 결과가 너무 깨끗하자 압박을 포기해야 하는데, 자신과 같이 정치를 하자는 것을 거절했다는데 앙심을 품고 은행예금을 강제로 압수해서 썼다네요.

이승만과 비슷한 길(조기유학)을 걸었으니, 이승만의 이미지를 올려줄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였죠.

하지만 유일한 박사는 단칼에 거절했죠.


유특한 사장도 나름 괜찮았으나, 역시 피는 진하다고, 유유제약의 3세 승계는 여타 재벌들의 탈세와 절세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죠. 


어려운 용어도 나오지만, 쉽게 말해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이용하여 자신의 지분을 늘리는 방법을 썼죠.(현재는 분리형 BW 발행 금지)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달인으로는 1호 승마 이재용 부회장이 있고, MB 아바타가 아니라고 하는데 행동은 아바타처럼 하는 백신 안철수 선생도 있습니다. 


결론 : 자식 리스크가 위인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농담삼아 하는 말이 정치인이나 경제인은 "무정자증"이 좋지 않을까 ㅎㅎㅎ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들기 있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