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축제때
난생처음
현대무용이라는 춤을 추는
여자를 봤다

춤도 정말 예뻤지만
같은 새내기임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혼자 춤을 춘다는게
대단해보였다
그날 나는
그야말로 영화장면처럼 반해버렸었다

그렇지만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와
제대로된 연애한번 못해봤었고

섭섭한 외모때문에 자신감도 없어서
고백할 엄두도 못냈었다

비오는 날
무슨 이유때문에
둘이 시내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응큼한 생각을 갖고
큰 우산을 가져갔었다
우산을 같이 쓰면 팔이 좀 부딪치고 그러겠지 ㅋㅋ
이런 순수한 응큼함

시내 약속장소에
걸어가는데 먼 발치에서
그 여자가 미소짓고 있는것이 아닌가

놀래서 막 뛰어갔던거 같다

-헉헉..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냥 일찍 나왔어 ^^
(이 여자는 항상 웃는다)

-시내가 좀 복잡할까봐
같이 쓸려고 큰 우산 가져왔어

-하하하하
나도 그럴거 같아서 큰 우산 가져왔는데
너무 웃기네 ^^
(이 여자는 대화의 반이 웃음이다)

난 다 기억난다
그날 그 여자 향기
나눴던 대화들
같이 갔던 가게들

그렇게 그렇게 미천한 내가 이 여자와 사귀게 되었고
내가 군대가는 날까지
정말 단 한번 싸우지도 않았다
정말 순수했으니까

군대에서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는 다른 친구들의
편지를 받고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던거 같다

수양록에 작은 글씨로 그 여자한테 내리는 저주를
빡빡이로 제대할때까지 적은 것 같다
중대에서 수양록을 나보다 많이 쓴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제대할때
소각로에 그 동안 적은 수양록을 모두 태우며
잊었던거 같다

하지만
어떻게보면 나한테는 과분한 여자였다
게다가
나같이 섭섭한 외모를 가진 놈에게
영화같은 첫사랑의 추억을 남겨줬으니
그건 그대로 아름다운 것 같다

"하루종일 비를 맞았다
온 몸이 흠뻑 젖도록~

그녀에 관한 모든 기억이
내리는 비에 씻겨 다 지워지길 바랬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
복잡한 시내로 향했다

하지만 가는 곳곳마다
지난 추억이 떠올라
더 우울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