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세계정상에 오른다는것은, 인생을 송두리째 내맡겨야하는 [드라마틱한 개인사]라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런 의미로의 모터스포츠는.... 영욕의 세월을 소모하는 스포츠의 대표선상에 있다해도 무방할것 같다. 모터스포츠는 다른 어떤 스포츠 분야보다도 비용이 많이들고... 화려하며, 군중을 매료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모터스포츠는 완벽할 수없는 인간과, 완벽하려 애쓰는 기계의 궁합이므로 늘....불완전하며... 가변선상에 놓여있다. 이러한 탤런트적 성향은 범세계적 관중몰이를 가능케하는 원동력이 되고있다. 세계적 바이크 경기 GP (Grand Prix : 전세계적 명성을 가지고있는 국제공인 모터사이클 경기로서 10억이 넘는 관중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를 순회하며 10 여차례의 경기를 펼친다. 바이크의 규격화된 배기량에 따라 125cc급(GP-3), 250cc급(GP-2), 500cc급(GP-1)으로 나뉜다. GP-3와 GP-2는 비교적 빠르고 민첩한 조성성을 요구하며 GP-1은 엄청난 스피드를 제압할 수 있는 컨트롤능력과, 과감성을 요구한다. 미국,이태리,일본,독일,호주,스페인등이 우세를 보이고 있다.) -1의 월드챔프 5관왕... 마이클두한은 앞서말한 그모든 설명의 대전제격인 인물이다. 마이클두한은 1965년 호주 Brisbane에서 태어났다. 스포츠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호주에서.... 두한은 9살에... 자연스럽게 바이크를 접했다. 모터크로스를 포함한 기본 라이딩을 착실히 다져온 두한은 19세때 Surfers Paradise Raceway라는 호주 국내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프로라이딩에 입문한다. 그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거치며 1989년 일본 Suzuka에서 드디어 GP-1에 정식데뷔 하기에 이른다. 500cc 그랑프리 출전 횟수 : 137회 (1989-1999) 500cc 그랑프리 단일 경기 우승 횟수 : 54회 (첫 우승 : 1990년 헝가리 Hungaroring) 500cc Podium 시상: 95회 ( 첫 Podium 시상 : 1989년 Hockenheim 3위 입상) 500cc 그랑프리 종합우승 5회(94,95,96.97,98년) 500cc Pole Positions : 58회 (첫 Pole Position : 스페인 Jerez 1990).../ (경기내용을 잘모르는 분들을 위해 참고적으로 설명하면, GP는 세계 여러나라를 순회하며 1년에 총 16차례의 레이스를 펼친다. 한경기가 치뤄질때마다 각나라를 순회하게 되며,16경기 총 평균점수를 통해 그해의 월드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 회차마다 대회를 열게되는 주최국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라 할 수 있다. GP에서의 우승은 곧 세계최고의 라이더로 인정받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개런티와 광고수익을 보장받는 선망의 대상이 됨을 의미한다.) 위에 전적이 두한의 월드그랑프리 성적이다. 바이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두한이 이뤄낸 위의성적표는 단순한 숫자의 의미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 경이롭기 그지없는 엄청난 역사임을 안다. 수천만명의 프로선수들중에....극소수의(0.01%) 선수들만이 그랑프리참가자격이 주어진다. 참가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영예이자 가문의 영광(?)이 된다. 하물며...그랑프리 137회 출전에 단일경기 54회 우승.... 월드챔피언.....5회우승....~!! 이게 무슨의미인지 알겠는가...? 마이클두한은 가히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라이더라는 말이되겠다. 하지만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 엄청난 성적이면에 감춰진 그의 남다른 인간적 면모와, 눈물겨운 승부근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그랑프리 대뷔이래 단한번도 소속사 혼다(HONDA)를 져버리지 않았다. 그가 월드그랑프리 2회연속 챔프자리에 오르면서....그의몸값은 가히 천문학적인 가치를 보이며, 타 경쟁사의 스카웃대상 0순위에 올랐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을 키워준 혼다사에 나머지 3번의 우승트로피를 바쳤다.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을 찾아다니는 비정한 프로세계에서 그만한 몸값의 프로라이더가 오로지 한소속사에 머무른다는것은 스스로의 주관없이는 결코 가능할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선 그런 우직한 남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두한이 이룩한 우승의 영광뒤엔 처절한 승부욕과 프로근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92년 그랑프리 8차전(독일 Assen)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는다. 다리 신경까지 마비되는 상황을 맞이하며, 두한은 프로라이더 생활을 더이상 할수없다는 판정을 받게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않고...바이크조종에있어 오른발 역할인 리어브레이크 조작을 과감히 포기하고 ,브레이크 페달대신 오른손 엄지를 이용해 리어브레이크를 레버로 조작할 수 있도록 고안해 냈다. (두한은 오른쪽다리의 대수술로 지금도 왼쪽다리보다 오른쪽이 짧다고 한다. 리어브레이크 레버조작은 그후로 많은 프로라이더들의 선택사항이 되버렸다) 그후 그는 그해에 1위보다 영예로운 종합2위를 차지했고...2년후 그랑프리 첫 월드챔피언에 오르는 영예를 안게되었다. 그후로도 크고작은 전도사고가 있었지만, 그는 훌륭하게 극복해나갔으며, 그랑프리 연속 5회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워나갔다. 그러나 1999년 스페인 Jerez에서 연습레이싱도중.....라운드코너 진입의 순간적인 실수로 200km 시속으로 고무타이어벽에 전신이 충돌하는 대형사고를 겪게된다. 그로인해 그는 이미 부서졌던 오른다리를 다시 다치고, 왼쪽어깨와 왼쪽손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재활치료를 했지만, 그당시 35세라는 나이와 신체손상의 악화로 결국 그 해 그랑프리 정식은퇴를 선언한다. 그의 은퇴식에서 그가 자신의 바이크로 트랙을 돌때, 수많은 관중들은 눈물을 참지못했고, 두한 자신도 코스를 마친뒤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있었다. 그의 은퇴경기는 전세계로 중계되었고...STAR TV 로나마 그를 지켜보며 나역시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은퇴후 그가 한국에 온적이 있었다...~! 그랑프리 주체국이 아닌 한국에서 그의 팬들이 그토록 많은줄 그역시 몰랐었나 보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와 단한번 악수할 기회가 있었고, 나는 그의 커다란 손을 마주잡았다. 치열한 프로라이더의 전사같은 이미지보다는 너무더 인간적인 푸근한 인상이었다. 오빠부대의 심정을 알것만 같다....~! 그가 애용하던 핼멧과 슈트는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고가의 상품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마이클두한 역시 역사의 한페이지로 잊혀지겠지만....결코 그가 이뤄놓은 그랑프리의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명예로 남게될것이다. 몸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이겨내며, 그가 이룩한 결과에.....두한자신은 스스로 어떤평가를 내릴까...? 적어도 그가 내게는 흠모의 대상이라는것만큼은 ..... 그가 얻을수 있는 확실한 결과물이다. -------------------------------------------------------------------------------- 강남 YSK 본부장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만약 1등이 되어서 상금을 타게 된다면 모두 그 분에게 드릴 것입니다. 고로, 악의적으로 퍼왔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라이더라면 진정한 월드챔피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않을까요?? 요즘 GP에 두한 선수가 출전한다면 저 역시 하루종일 MOTO GP만 보고 있을 것 같군요. 발렌티노 롯시, 맥스 비아지, 캐니 로버츠 등등 우수한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전설의 마이클 두한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것입니다. 롯시가 두한 헬맷을 착용하고 GP에 나온다 한들 누구하나 욕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남자로써, 또 같은 라이더로써 경의를 표합니다. 언제 다시 방한하지 않을까요?? 그 떈 꼭 직접 뵙고 싶군요. 극성팬이 톱스타 보고싶어하는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