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사건입니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스팸 전화인가?" 그래서 또 어떤 곤란한 질문으로 텔레마케터나 고객서비스 담당자를 당황하거나 놀라게 만들까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차분한 여인의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나의 차량번호까지 알고 있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듣고 보니 잘 세워놓은 제 차를 그 여인의 차가 받았다고 합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면서 그동안 보배드림을 통해 누적된 각종 자동차사고 경험들과 대처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건의 현장에 가 보니 11살 된 제 차량의 좌측 범퍼에 심하지는 않지만 좌상과 찰과상의 흔적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어쩔줄 몰라하는 여인이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 차에 장착되어 반짝이는 블랙박스 카메라 때문에 그냥 가지 못하고 연락을 한 것 같았습니다.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제가 음지에서 일하고 있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회사직원인 것 같았습니다.

 

 순간 그 때까지 갈등하고 있었던 제가 얼떨결에 엉뚱한 말을 내뱉고야 말았습니다. "그냥 가세요. 이번엔 용서해 주지요. 당신도 다음에 누구에게 한번 살짝 받히면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멋있는 척(?) 주차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며칠 전 보았던 화장실 명언의 주제도 '용서'였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한 번 나도 써먹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말이기는 했습니다. 게다가 새차도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와서는 조금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무심코 나온 헛소리(?)로 제 돈 들여서 고가도로 밑 덴트집을 함 찾아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행한 용서가 지구를 한바퀴 돌아 다시 제게 돌아올 날을 기대합니다.


 사진과 제목의 출처는 'SBS스페셜 -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의 포스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