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분리술(鉛銀分離術)은 조선 초기에 은광을 채굴할 때 이미 적용되었지만, 세종 말기에 은광 개발이 중지되고, 또 국가가 은기(銀器) 제조에 힘쓰지 않아, 그 기술이 은공(銀工)에게 제대로 전습되지 못하였다. 이 기술은 15세기 초 양인 김감불(金甘佛)과 장예원 노(掌隷院奴) 김검동(金儉同)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다.
유교 때문에 신기술은 계속 배척당해 망한거임. 그래도 500년이나 간게 신기
근데 한반도에 애당초에 발굴된 은광도 별로 없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