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차이나타운 이상으로 심각한 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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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0-10-14 124541.png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를 기리는 나라가 있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기념하는지 모르겠는 인물.jpg (feat. 북한, 중공) 강원도 차이나타운 이상으로 심각한 것.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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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정율성이 누구일까?


화면 캡처 2020-10-14 123008.png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를 기리는 나라가 있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기념하는지 모르겠는 인물.jpg (feat. 북한, 중공) 강원도 차이나타운 이상으로 심각한 것.jpg

일제 강점기 조선에서 출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작곡가?



이 사람의 대표작은 바로...



 

 

중국의 정규군인 인민해방군 군가 가운데 No.1 군가인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화면 캡처 2020-10-14 122629.png \'중국 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를 기리는 나라가 있다?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기념하는지 모르겠는 인물.jpg (feat. 북한, 중공) 강원도 차이나타운 이상으로 심각한 것.jpg

그렇다. 이 사람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제1군가를 작곡한 인물이다.

정율성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에 가입했다.
 
 
이후 1939년 1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했으며, 이후 '팔로군 행진곡', '연안송' 등을 작곡하였다.

이 가운데 '팔로군 행진곡'은 이후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이 되어 인민해방군의 중요 군가로 쓰였으며, 1988년에는 덩샤오핑의 재가로 중국인민해방군의 대표 군가로 채택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현재 중국에서는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작곡한 녜얼, '황허대합창'을 작곡한 셴싱하이와 더불어 정율성을 '중국의 3대 작곡가'로 추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광복 이후 행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 해주에서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때 음악전문학교를 창설하고 음악 인재를 양성하였다.

1947년 평양으로 들어와 조선인민군 구락부의 부장을 지냈고, 인민군협주단을 창단하여 단장이 되었다.

1950년 9월 중국으로 갔다가 같은 해 12월, 중국인민지원군의 한 사람으로 귀국하여 전선 위문활동을 전개하였다.

1951년 4월 중국으로 가 1976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작곡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연안에 있을 때 작곡한, 「연안송가(延安頌歌)」와 「팔로군행진곡(八路軍行進曲)」(이후 「중국인민해방군(中國人民解放軍)」 군가로 바뀌어 불렸다) 외에, 「3.1행진곡」, 「조선해방행진곡」, 「조선인민군행진곡」, 「두만강」 등이 있다.


- 정율성(鄭律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한으로 가서 조선인민군협주단을 만들고 초대 단장을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시기 중국인민지원군으로 다시 들어와 인민군을 대상으로 한 위문활동을 하였다.


이 외에도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노래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즉 중국 인민해방군과 북한 조선인민군 모두에서 군가의 아버지 격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율성은 '북중친선'(북한식 표현으로는 '조중친선')을 상징하는 인물로도 활용되고 있다.





 

 

북한 조선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이 부른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1분 38초부터 한국어 번안 가사가 나온다.





13억 중국인의 가슴마다 아로새겨진 ‘중국인민해방군가’의 작곡가 정율성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낸 조국인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중국의 2백만 조선족 동포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있는 작곡가다.



- 정율성음악축제 홈페이지


http://jysfestival.kr/index.php?code=0201



음악가로서의 위상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비밀단체에 의열단에 가담하여 비밀항일운동을 하면서 매주 상해로가 러시아의 저명한 음악가 크리노와 교수로부터 4년간 음악을 배웠다.


그후 중국 최고의 민족작곡가로 존경받는 선성해에게서도 음악을 배운 그는 중일전쟁이 터진 후 중국항일투쟁의 근거지인 연안에 들어가게 된다.


연안의 노신예술학교 음악학부에 입학한 후 연안의 변혁적 분위기는 그의 창작열을 들끓게 했다.


모택동이 참석한 대규모 야회에서 정율성은 “연안을 노래하다”라는 곡을 불러 청중들의 심금을 울린다.


웅장하면서 서정적인 이 노래가 오늘까지도 중국전역에 퍼져 우리의 “아리랑”처럼 널리 애칭되는 “연안송”이다. 이후 정율성은 홍군의 대장정을 직접 답사하여 그 감흥을 바탕으로  ”팔로군대합창”을 창작한다. 그중 “팔로군행진곡”은 중국인들에게 가장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다. 


특히 이 노래는 1988년 중국공산당정부로부터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비준되었으며,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개막식 첫 프로그램으로 연주되기도 했다.


2014년 7월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서울대 강연에서 한·중 관계 역사 속 우호 인물로 거론되기도 했으며, 2015년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그의 작품 중국인민행방군군가(일명 팔로군행진곡)이 울려퍼졌다.



- 정율성음악축제 홈페이지


http://jysfestival.kr/index.php?code=0202




image.png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 기념하는지 모르겠는 인물.jpg (feat. 북한, 중공) 강원도 차이나타운 이상으로 심각한 것.jpg

http://jysfestival.kr/index.php?code=0202



정율성음악축제 측에서는 정율성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쪽은 강원도 차이나타운과는 달리 이미 오래 전부터 기념사업과 음악회, 동요대회, 도로명 주소 명명 등 추모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의나라 위인을 우리가 왜 영웅대접이냣!

 

 
펌(에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