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3-129의 故김재현기관사를 아십니까?

어제 철도박물관 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서 인터넷으로 습득한 짧은 지식으로 짜집기 해봅니다.

 

 

철도박물관에 웬 증기기관차 모형이 떠억...

예전같음 그냥 형체만 보고 딴거 보러 갔을 터인데....(응~ 이것은 옛날 기차. 끝 /다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 보니...

 

한국전쟁 당시 미 제24단장 딘 소장을 구출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들어갔던 기관차 모형.

그때 김재현기관사와 미특공대 33명이 모두 전사했다.

 

그후 집으로 와서 갑자기 김재현 기관사에 대한 내용이 궁금해서 어리 저리 검색해보니....

 

이분 이십니다.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되었다 합니다.

김재현(金裁鉉) 기관사
Engineer Kim Jae-hyun
(1923. 9. 21 ∼ 1950. 7. 19)

김재현 기관사는 1923년 9월 21일 충남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 9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3월부터 대전철도국 소속 기관사로 재직하였다.
6·25 전쟁으로 대전시가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던 날인 1950년 7월 19일 충북 영동역에서 군수물자 후송작전에 참여 중이던 그는 미군 결사대 30여 명을 기차에 태우고 이미 적군이 점령한 대전까지 가서 그곳에 남아있는 미군 제24사단장인 딘소장과 우군을 구출해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대전에 남아있던 국군은 이미 16일에 철수한 상태로 대전으로 향하는 모든 철로는 북한군의 통제 하에 놓여 있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적탄 속을 뚫고 기차는 대전역에 도착했으나 사선을 통과하는 동안 결사대원 27명이 전사하였다.

결국 결사대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총탄세례로 벌집이 된 기관차를 몰고 다시 귀로에 올랐다.

기관차가 대전시 판암동 근처의 적진 속을 달려 돌아올 무렵 김재현 기관사는 전신에 8발의 총상(가슴 관통상)을 입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였다.
김재현 기관사가 구출하고자 한 윌리엄 딘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도왔던 군정장관이자 한국 지형을 알고 있는 유일한 미군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당시 한국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철도는 가장 중요한 육송교통수단이었기에 항상 적의 주 공격대상 이었다. 그러나 김재현기관사를 포함한 참전 철도용사들은 희생을 무릅쓰고 기꺼이 병력과 군수물자 및 피난민을 수송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힘이 되었다.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임무완수를 위해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김재현 기관사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고자 1962년 순직비가 건립되었고 1983년에는 국가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철도인으로는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 07-5-057에 안장되었다.
미 국방부는 2012년 6월 26일 고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특별민간공로훈장(Secretary of Defense exceptional civilian service award)을 추서하였다.

이 훈장은 미 정부가 민간인이나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격으로 국내 수상자는 고인이 처음이다.

그냥 쉽게 풀어서 이야기 하자면...

지금 평양에 행방불명된 장군이 있으니깐...

기차타고 특공대 30명 태워서 보내줄테니깐... 알아서 찾아오라고...

완전 죽으러 간것과 다름 없는 것이죠.

 

고 김재현기관사는 1남1녀의 아이와 아내가 있는 한 가족의 가장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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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소장이 그 유명한 대전에서 박격포 직접 매고 발사하고 싸운 장군 입니다. 

그마만큼 전쟁이 매우 급박했던 상황이였다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각부대 사단장들... 박격포 작동법이나 알까요...? 

딘 소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또 한두 끝도 없습니다.

 

아래 글을 그냥 참고..

딘 소장은 6·25전쟁 초기 파죽지세로 남침해 내려오는 북한 인민군을 대전에서 일단 저지, 미군 추가병력이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벌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권총을 빼들고 선두에 서서 인민군 탱크와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 부하들에게 후퇴명령을 내린다. 그 자신도 후퇴 도중 대전 외곽에서 길을 잃고 36일을 산과 들을 헤매다가 1950년 8월 25일 전북 진안에서 인민군에게 잡힌다. 인민군에게 바로 잡힌 게 아니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속인 두 진안 주민이 그를 인민군에게 넘긴 것이다.

뭐 글을 보니 단돈 5달러에 딘소장을 밀고 했다 하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답없는 꼴통 애들은 항상 존재를 하는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딘 소장은 북한군 포로가 되어 휴전 협정 이후 포로교환으로 풀려났다합니다.

그리고 1981년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총탄과 포탄 속으로 전속력으로 전진했던 미카 3-129호 열차 입니다.

말그대로 수백발의 총알과 포탄을 맞아가며 달렸던 불사조 기관차 실사판입니다.

 

미카 3-129호는 작전 참가 후

간간히 행사에 쓰이다

1981년 부터 2년간 동해남부선 부산~경주간 관광열차로 운행을 종료하였고.

2008년 등록문화제 재415호로 지정되었으며, 2014년 07월02일 부터 호국의 영령들이 잠든

국립대전현충원 (호국철도전시장)에 전시중 이라고 합니다.

 

국방군사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철도직원의 70% 정도의 약 1만9300명이 개전과 함께 교통부 산하

전시군사수송본부에 배속되어 군사수송본부에 배속되어 군사수송지휘관의 지휘 아래 병력과 군수물자, 피난민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이 중 287명이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묻혀있다가 이제야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故김재현 기관사 외에 군수물자, 피난민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한 287명의 철도인의 명복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가슴으로 진심을 다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분들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되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근무중에 두서없이 써서 철자 틀린거 있어도 이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