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 부산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 온 한국남자가 있는데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외소한 체격에 고아원에 홀로 있는 것을 보고 입양기관에 다니는 아주머니가 직접 입양을 했더라구요. 외소한 체격덕에 경마를 모는 쟈키를 했었구요. 현재는 큰 정육업체에 다니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잘 지내며 살고 있습니다. 입양이 되서 잘 된 케이스 많아요. 이 친구가 두번쨰로 아는 사람인데 이전 사람은 집 지붕 교체하는 회사의 매니저였습니다. 공통정은 한국말은 전혀 못하고 밖은 황인종 안은 전형적인 백인이죠.
쓸데없는 ....
한때 대한민국 세계1위 고아 수출국 맞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장기매매? 그 당시 살아보셨나요?
제 다니던 때 초등-> 국민학교이고 당시 유솜인가?
구호단체서 우유보내주면 학교서 점심시간에 빵 만들어주고 분유끓여서 주고 했지요.
저희 집 중류집이 었는데 그래도 점심시간에는 학교서 주는걸로..
하루종일 그한끼로만 지내는 애들도 있었슬 정도..봄에는 먹을거 없어서 봄나물과 송기[소나무어린줄기]먹는 집도 많았고...
우유가루도 주고..탈지분유..
그 만큼 못먹고 봄에는 굶어 죽는 분들도 많았고 거지도 많았고..
전쟁 후라 [아시아서 최고로 가난했던나라 입니다 /필리핀 태국등도 우리나라 보다 훨신 더 잘 살았습니다.]
제대로 된게 하나도 옳게 없든 시절입니다.
사람 머리카락으로 가발 만들어 수출하던 때 ..
국민 대부분이 봄에는 먹을 양식 걱정하던 시절..
외국으로 가면 그래도 배는 안굶는다 이런말이 돌아서
많은 부모님들이 자기자식 배고프지 말고 살아라고 보냈고
또
전쟁과 갖가지 일들..병 사고 가난등으로 어린애만 두고 젊어서 돌아가시는 분들..
키울 수가 없스니.
보호자없는 애들은 고아원에 보내고 이 어린이들이 많이 외국으로 간 겁니다. 세계각지로...
얼마전 까지 그 해당 단체가 있었습니다.
시대를 살아보지 않으셨다면 직접 보고 느끼지않으셨다면 그냥 ....
저희들 대부분이 알고 느끼고 경험한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봄 양식 걱정 안하고 살게된 거 불과 4~50년 전 부터입니다.
덧붙이면 자동차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자가용이 조금식 많아지게되었습니다
요즘이야 흔하디 흔하지만...
그래도 당시도 사회기강 있었고
현명한 민족이라 뭉처서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고
지금 아시아 ~ 세계서도 알아주는 국가가 된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