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발제 도중 '그만하라'며 끊기는 처음.. 치욕이었다"

양원모 입력 2018.04.26. 19:00 

-의원들 향해 “호통쳤다”, “일침을 놨다”는 기사도 나왔는데 

“호통은 무슨. 완전 오보다.”

-그럼 어떻게 된 건가 

“내가 발제를 하는데 의원 분들 하고, 보좌관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의원 분들 어디 계시냐. 손 좀 들어보라’고 말했던 게 ‘일침을 놨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갔다. 내가 정말 ‘의원 어디 갔느냐’는 식으로 말했다면 이 바닥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겠느냐. 그런 자리에 보건복지부 사무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의사들이 있는 힘을 다해 달려들어 현안을 설명해야 한다. 나는 (행사에 참석한) 학회 인사들도 문제라고 본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의원과 의원실 관계자들이 토론장을 일찍 빠져 나갔다. 그러자 ‘중요한 사람들도 없는데 더 무슨 토론회를 진행하느냐’는 분위기가 학회 사람들 사이에서 감돌았다. 그때 내가 발제 중이었는데, 행사 좌장(사회자) 역할을 맡은 한 학회 인사가 발제를 끊었다. 당시 행사에는 복지부 국장(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남아 있었다. 끝까지 남아준 게 고마워서 이 분이라도 모시고 내가 준비한 외상센터 관련 발제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장에게 다시 이런 의사를 전하고 발제를 이어갔다. 그런데 5분 뒤쯤 화를 내며 ‘정말 안 끊냐’고 하더라. 치욕스러웠다. 20년 의사 생활 동안 발제 하다 끊긴 건 처음이었다. 너무 화가 나 그냥 (회의실을) 나와버렸다. ” 

-외과 5대 학회 수장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게 그렇게 힘든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자리는) 처음 봤다. 의사들끼리 학회를 하면 보통 서울역 근처에 있는 음식점에서 모여 회의하고 헤어진다. 그만큼 이번 토론회가 이례적인 자리였다는 거다. 그런 만큼 자리에 남아있던 복지부 국장을 향해 끝까지, 진정성을 가지고 의사들이 의료계 발전 방안을 설명해야 했다. 밥 시간이었으면, 짜장면이라도 시켜놓고 복지부 국장과 얘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안 했다. 이건 큰 문제다. 복지부 국장은 우리 목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복지부에 (우리)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내가 봤을 때는 말로만 ‘죽겠다’, ‘죽겠다’ 하는 것 같다.”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사실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거다. 행사에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의원들이나, 발제를 끊는 학회 인사나 마찬가지다. 특히 의사들은 ‘적당히 하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야 한다. 정말 (외과 분야가) 심각한 인력난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면 (듣는 사람 없다고) 중간에 발제를 끊고 이러겠는가. 당장 자기 목에 정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수 있을까.”
 

-사족이지만, 이번에 의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최대집씨에 대한 잡음이 많다.

“최대집 회장 당선도, 이번 토론회 파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라고 나는 본다. 지구상에 어느 의사들이 빨간 띠 머리에 두르고 노조 파업하듯이 파업을 하나. 학회장 같은 의료계 고위 인사들이 (정부와 의사들 사이에서) ‘범퍼’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는 거다. 왜냐. 자기는 이미 많은 걸 이뤄놨으니까. 그러니 평범한 의사들이 빨간 띠 두르고 거리에 나선 거다. 최 회장 당선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학회장조차 의원들 없다고 회의를 중단시키는 마당에 국회에 우리 의사들의 절박함, 진정성이 어떻게 전달되겠나.”

-말끝마다 답답함이 느껴진다. 

“심각하다. 많은 의사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의사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정책의 도구다. 우리가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환자들을 살릴 순 있다. 하지만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상위 수준의 정책 결정권자(복지부 국장)가 앞에서 자료 받아 적고 (열심히) 듣고 있는데 그걸 끊어버리면… 지금 같은 의사들 자세로는 절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요약

1. 다들 알고 있던 대로 자한당 및 민주당 국회의원 불참.

2. 허탈했지만 그래도 복지부 국장(이기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이 있어 열심히 발제 함.

3. 행사 좌장(사회자) 역할을 맡은 한 학회 인사가 발제를 끊음.

4. 끝까지 남아준 게 고마워서 이 분이라도 모시고 내발제를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좌장에게 다시 이런 의사를 전하고 발제를 이어감.

5. 좌장이 5분 뒤쯤 화를 내며 ‘정말 안 끊냐’고 함

6. 20년 의사 생활 동안 발제 하다 끊긴 건 처음이라 치욕스럽고 너무 화가 나 그냥 (회의실을) 나와버림.  -> 국회의원들이 안나와서 회의실 나간게 아님.

결정적 마지막 한마디

“심각하다. 많은 의사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의사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정책의 도구다. 우리가 학문적으로 뛰어나고, 환자들을 살릴 순 있다. 하지만 도구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상위 수준의 정책 결정권자(복지부 국장)가 앞에서 자료 받아 적고 (열심히) 듣고 있는데 그걸 끊어버리면… 지금 같은 의사들 자세로는 절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