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표방한 일명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료행위에 대한 정밀한 가격 매기기가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민간 의사들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용역연구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의협 비대위는 전날 대한영상의학회에 ‘MRI 및 초음파 급여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협조 귀 학회 개별 진행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공문 취지는 김 교수의 연구용역에 협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뢰를 받아 자기공명영상(MRI)과 초음파 검진의 전면 급여화를 앞두고 MRI 등의 적정 사용량에 대한 의학적 기준을 마련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발표한 ‘문재인 케어’ 추진의 일환이다. 현재 건보가 제한적으로만 적용돼 가격이 비싸고 천차만별인 MRI, 초음파 검진을 건보에 편입하려면 정밀하게 가격(의료수가)을 정하기 위해 적정한 사용횟수 등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의협 비대위의 개입이 있기 전, 영상의학회는 김 교수의 연구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신경외과ㆍ정형외과학회 등에 이런 기준을 함께 마련할 전문가 위원을 추천해 달라고도 요청했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가 영상의학회에 항의성 공문을 보내면서 제동이 걸렸다. 공문에는 ‘김 교수의 연구용역 과제는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인데, 이에 대한 투쟁과 협상의 전권은 비대위가 갖고 있다’며 ‘따라서 개별 학회가 접촉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문을 받은 영상의학회는 결국 김 교수에 대한 협조를 중단했다. 김 교수는 “업무 방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이 밖에도 직간접적으로 (비대위 측의)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는 13만 의사들의 권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문재인 케어’에 반발하고 있지만, 의견 표명을 넘어 개별 의사와 연구자에 대한 집단적 압력으로 비화하는 것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구 용역이 계속 제동이 걸리면 ‘문재인 케어’의 실행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아무리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 해도 민간 연구까지 방해하는 것은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의협 내부 사정에 밝은 개원의도 “비대위가 선명성 경쟁에 매몰돼 잇달아 무리수를 두고 있다”면서 “의협 지도부가 대신 대국민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의협 비대위는 최근 일부 신문 지면에 ‘문재인 케어’ 비판 광고를 실었는데 배경 사진으로 포항 지진 피해 현장을 사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문재인 케어’와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반대 등을 내걸고 지난 9월 구성된 비대위는 현 의협 지도부와 투쟁 방식 등에 있어서 의견 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필수 의협 비대위원장은 “영상의학회에는 강제가 아닌 협조 요청을 한 것뿐이며, 학회 측도 흔쾌히 응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