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으로 대왕 세종에서도 이 장면이 묘사되는데, 원래 잘 화도 안 내는 세종은 정창손의 발언에 작중 최고 수준으로 대노해서 일갈한다.

정창손 : 지금껏 백성들이 문자를 모르고 교육을 받지 못해서 비루한 짓거리들을 해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천품은 교육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종 : 감히 어디서 과인의 백성을 능멸하고 나와! 백성의 천품이 교화될 수 없다면 네놈이 정치는 왜 해? 단지 백성 위에 군림하면서 권세를 누리기 위해선가!

그리고 격노한 세종에 의해 실제 역사와 같이 파직.

 

 

참고로 정창손만 파직된 이유는, 《삼강행실도》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성인군자는 타고나는 것이라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번역씩이나 해주면서 교육시켜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23]"는 요지의 말을 했기 때문인데, 이런 말은 현대는 물론이고 당대의 유학자라도, 아니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었다.

 

유학의 핵심은 한마디로 "수양을 열심히 한다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만약 정창손의 말대로라면 빈민이던 안회나 양아치 출신의 자로를 제자로 삼아 가르친 공자는 헛짓거리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때 세종대왕은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그야말로 쓸데없는 용속한 선비"라며 정창손을 강하게 비판했다.[24] 여담으로 정창손은 후에 김질과 함께 사육신을 고변했다. 세종의 선견지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