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었는지, 실화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어쩌면 이 게시판에서 봤을지도 모를,


이야기를 기억 나는대로 재구성했습니다.


편의상 반말은 애교로 봐주십시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어디서 '줏어들은' 이야기 입니다. ^^





중부 고속도로


아버지차는 95년식 LPG겸용 산타모이다.


연식도 연식이지만, 적산 거리만 해도 지구를 6바퀴 돌았다.


그렇게 차를 바꾸시라고, 다 사드리진 못해도 차값의 상당부분은 내가 부담하겠다고 말씀드려도


아버지는 항상,


"마음만 받으마. 기름값도 만만찮고 아직 잘 나가는데 뭐하러 그러냐."


하시며 웃어넘기셨다.


아들을 걱정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차 자체보다는, 타고 다니시다가 차에 이상이 생겨서 사고라도 당하시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과


이거 차값 전부 지불하라는 말씀이신가 하는 약간 불경(?)스런 마음이 교차되곤 했었다.


더구나, 어머니께서 같이 운전하고 다니시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기에- 차는 꼭 바꾸실 필요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없는 월급 쪼개서 적금까지 붓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친척들이 서울에 계시기 때문에, 부모님도 가끔 서울을 올라 오시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꼭 차를 끌고 올라오신다.


두 분이 같이 올라오시면 덜 할테지만,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께서 더 많이, 그것도 혼자서 운전하고 오실때가


있어서, 올라오신다고 하면 -마음은 그게 아니지만- 뭐하러 힘들게 운전해서 올라오시냐고 타박아닌 타박을 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올라오신다고 했는데, 예상 도착시간을 1시간 반이나 넘겨서 그 시간동안 수십통의 전화를 하고


발을 동동 구른적이 있는데, 무사하게 오셔서 왜 이렇게 늦게 오셨냐고 하니까


피곤해서 차에서 잠깐 잤는데 일어나보니 한시간이 넘었다고 하신 적도 있다.


(그래도 내부가 커서 뒷자석을 다 펼쳐놓으면 침대만큼 편하게 잘 수 있긴 하다.)


어머니의 사촌언니, 즉 나에게 오촌 이모님 되시는 분이 오랜기간 병상에 누워계시다가


악화돼서 오늘내일 하시는 와중에, 느닷없이 어머니를 찾으시더란다.


원래 어머니랑 조금 불편한 사이셨는데, 그래서 거의 왕래도 안하던 집안이었는데


그렇게 애타게 찾으시니 의아하지만, 어머니께 연락을 해서 이러이러하니 좀 와주십사 했단다.


마침 서울에 볼 일도 있고해서 겸사겸사 차를 끌고 올라오셨다.


올라오셔서 바로 사촌언니댁으로 가지 않고, 성북동에 있는 이모댁에서 잠시 쉬고 계셨다.


잠든지 30분쯤 되었을까, 이모댁으로 부고가 날아들었다.


10분전에 별세하셨다는 것이다.


살아계실때는 그렇게 야속하고 얄밉더니, 너무너무 불쌍하고 미안하고 눈물이 엄청 나시더란다.


더구나 그렇게 애타게 찾으셨다는데 못뵙고 보냈으니..


아무튼 그렇게 장례를 다 치르고나서 부산에 내려가시는 날 저녁.


-내가 모셔다 드리려고 월차를 냈다.- 잠깐 잠이 드셨는데


어머니 꿈에 사촌언니가 나오셨더란다.


사촌언니가 어머니를 보고


"ㅇㅇ아, 왜 안왔니. 왜 안왔니."


하면서 피눈물을 흘리시더란다.


너무 무섭고 깜짝놀래서 어머니는


"미안해, 언니. 내가 잘못했어요."


라고 대꾸 하셨단다.


놀래서 깨셔서는 식사를 하시는 둥 마는 둥 하시고는


내게 빨리가자고 재촉을 하시는 것이었다.


왜 그러시냐고 여쭤봐도 그냥 빨리 가자고만 하실 뿐,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이모가족과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서 출발을 했다.


대략 밤 10시쯤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고 나서야 꿈 얘기를 하시는데


겉으로는 -죄송스럽게도- 개꿈이라고 치부해버렸지만, 내심 오싹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찜찜해 하시고 불안해 보이시던 어머니는 20분쯤 가다보니 피곤하셨는지 이내 곤히 잠드셨다.


원래 장거리 운전할때는 좀 쏘는 스타일인데, 차도 차거니와 옆에 어머니가 타고 계셔서 2차선에서 정속주행 중이었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온지 대략 한시간 쯤 되었을까, 화장실도 가고 싶고 슬슬 지루해질 무렵.


뒤에서 들어오는 느닷없는 하이빔.


2차선에서 정속주행하고 있었기에 처음엔 내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하고 계속 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하이빔을 날리는 것이었다.


백미러로 보니 그랜져쯤 되는 것 같았다.


차량이 꽤 있긴 했지만, 평일 밤이라 소통도 원활하고 추월차선인 1차선은 비어있었다.


이 차를 상대로 배틀이라도 하자는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피곤하게 굴지말고 급하면 얼른 추월해서 꺼져라하는 마음에 속도를 80km/h까지 줄였다.


추월하지도 않고 뒤따라 속도를 줄이는 뒷차.


또 날아드는 하이빔.


2차선을 무지하게 사랑하나보다 하고 1차선으로 변경.


1차선으로 따라 차선변경하는 뒷차.


이쯤되니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어머니도 주무시겠다, 마침 심심하기도 했겠다 오늘 함 죽어보자 하면서 킥다운.


한박자 느린 반응, 너무 천천히 올라가는 속도계. 젠장.


이 차로는 150이상 내본적이 없지만, 아무튼 나름대로 쏘기 시작했다.


일정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오는 뒷차. 이제는 하이빔도 모자라서 클락션까지 울리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어차피 떨쳐내지도 못할거 휴게소에서 시비를 가려보자 하는 마음에


휴게소만 나오길 바라면서 내달리고 있었다. 여전한 하이빔과 클락션.


남이JC를 지나서 경부고속도로에 오르자마자 죽암휴게소 표지판이 보였다.


차가 따라오는지 안 따라오는지 백미러로 확인한 후, 휴게소 진입하겠다는 깜빡이를 넣었다.


따라서 깜빡이를 넣는 XG. (가로등 덕에 차종은 식별이 되었는데 그랜져 XG였다.)


마음 한 편엔, 내가 휴게소로 들어가면 저는 제 갈길 갈 줄 알았더니, 당당하게 따라들어오는 모양을 보고


조폭인가 하는 두려움도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차하고 내리니 우리 차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주차하는 XG.


조금은 움찔하는 마음으로 그 차로 가까이 가니까 창문을 내리는데,


웬걸, 의외로 점잖게 생기신 노부부가 타고 있었다.


"왜..."


라고 입을 떼자마자,


"괜찮으세요?"


라고 묻는 노신사.


괜찮으냐니? 자기땜에 좀 불안불안하게 -이 차로써는- 엄청 밟고 왔는데..


좀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뭐가요? 아저씨가 길비켜줘도 안지나가고 계속 상향등키면서 쫓기듯 왔는데 괜찮냐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차 지붕에.."


"지붕에 뭐요?"


잠시 숨을 고르더니, 한 숨에 다 얘기하는데 들어보니,


중부때부터 봤는데, 차 지붕에 사람같은게 있어서 봤더니,


웬 늙은 여자가 자꾸 조수석으로 들어가려고 하길래 귀신으로 판단하고 못들어가게 상향등 키고 클락션 울리고 했단다.


그래도 자꾸 들어가려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계속 따라왔단다.


클락션과 상향등을 날리면 흰눈을 뜨고 자기차를 노려보길래


가까이 붙지도 못하고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왔다고 했다.


경부고속도로 진입 후 부터 안보이길래 내심 안심하고 있다가 휴게소에 들어가는 걸 보고 말해주려고 따라 들어왔다고 했다.


이게 웬 헛소리냐, 미친 사람 아닌가 싶어서 봤더니


눈빛은 정말 진지하고, 걱정스럽다는 눈빛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그 노부인도 마찬가지로..


부부가 같이 미쳤냐고, 아님 졸았냐고 반박하려다가, 그 모습에 별일 없으니 걱정마시라고 했다.


"지금은 없는 것 같네요. 부디 사고 안나게 조심해서 가세요."


하고 휴게소를 빠져나가는 XG.


별 희한한 노인네도 다봤다며 툴툴거리고 차로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일어나계셨다.


휴게소에 화장실가려고 왔다고 피곤하시면 더 주무시라니까 하시는 말씀이..


"꿈에서 또 네 이모님 나오시더라. 계속 왜 그랬냐면서 차 지붕에 매달려서 머리만 창문으로 들이밀고 물어보는데, 무서워서 혼났다. 이제 더 안자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