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처가를 다녀왔다. 서울의 턱밑이라고 할 수 있는 양수리 부근이기 때문에 그리 멀지 않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도회지에서 아이들 기르는 삶 치고 여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나도 곳간에 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가진 것 없는 가장이고 보면 처가는 그만두고 정릉에 계시는 부모님 댁을 찾기도 버거울 일이다. 특히 글을 쓰게 된 이후에는 생계와 창작, 생계와 창작에 연관되는 분들과 술 마시는 것 이외의 시간을 낸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어쩌다가 짬을 내어 처가를 가는 것도 재충전이거나 아이들을 신나게 풀어놓아 뛰어놀게 할 목적이니, 이래저래 죄송하고 송구스럽다. 아무튼 처가에 가는 것은 대단히 흔쾌한 일이다. 그곳의 공기는 갓 캐낸 냉이처럼 신선하고 잡티 하나 없이 담백하다. 그것을 폐활량의 한도까지 빨아들이면 영육靈肉에 찌들어 붙은 온갖 불순물이 우수수 털려나가고 천연의 비타민이 온몸 그득 충전된다. 우화羽化한 나비처럼 새로워진 몸으로 작은 둔덕에 올라 남한강을 바라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멋이다. 출출하고 헛헛해졌을 때 숯불에 고기를 구워 제철나물에 싸먹는 맛을 무엇에 비길 것인가, 이 무렵에는 잘 띄운 메주로 담아낸 청국장을 끓여내고 묻어둔 김장김치를 쭉쭉 찢어 걸쳐 먹는 것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먼저 당도한 처형과 처남댁이 빚어낸 만두도 기가 막혔다. 동서형님이 자네는 먹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꺼내오는 것은 전혀 예상 밖으로 살아 있는 자라였다. 장인께서 자라의 목을 따고 받아낸 피를 소주에 타서 건네신다. 필자가 생긴 것과는 달리 비위가 약하여 - 개고기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한다. - 차마 삼키지 못하다가 장모님의 눈치를 받고서야 눈 딱 감고 들이켰다. 소주와 자라탕을 곁들여 이러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나중에 여기 와서 살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을 드렸다. 나는 고향을 - 경상북도가 고향이다 - 오래 떠나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도 없고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인연이 끊어질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자식들을 어느 정도 길러놓았을 무렵이기 때문에 나도 내 자신을 위해 살기를 바랐다. 나는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다. 분가한 자식들과 가깝고 의미 있는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곳은 처가가 적격이었다. 시기가 되고 여건이 허락되면 여기서 조용히 글을 쓰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물론 처가를 상속할 처남들이 불편할 수도 있었다. 처가의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전답과 주택이야 당연히 큰처남이 상속할 것인데, 그 이전에 내가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구입해 달라고 말씀 드린 것이었다. 당장이야 돈이 없지만 어떻게든 마련해 드릴 터이니 남한강이 바라보이는 둔덕 위의 폐가廢家를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거기에 소담한 집을 짓고 글을 쓰고 과수果樹 몇 그루와 텃밭이나 가꾸면서 찾아오는 벗들을 맞는 것은 내 필생의 소원이었다. 그런데 장인께서는 허탈하게 웃으시며 소주를 털어 넣으셨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싶어 살피는데, 장모님께서 연유를 말하셨다. 침통한 안색으로 ‘이쪽에 고압선 철탑이 지나가게 되었다’ 며 말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믐밤에 정전이라도 된 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초고압전기의 송전선送電線이 지나가면 그 주변에는 사람이 살기 어렵다. 예전에 아무것도 모를 때는 송전선 바로 아래에서도 무신경하게 사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것이 끼치는 폐해가 알려지게 된 다음부터는 송전선로 주변을 찾는 사람은 없다. 송전선로에서 발생하는 초고압의 전자기파電磁氣波는 허공에 떠다니는 중금속 폐수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아직 구체적인 연구결과가 공표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그것이 지나가게 되면 그런 땅을 누가 구입하려 들 것인가, 그런 점을 감안하여 약간의 보상이 나오겠지만 그것으로 어디 가서 산다는 말인가, 보상이 충분하다고 해도 대대로 살아왔던 고향을 뜨기 어려울 것인데 겨우 쥐꼬리만한 것을 받고 나갈 생각을 하니 차마 말씀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제는 몹시 술을 마셨다. 당뇨가 있기 때문에 금주를 해야 한다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머지않아 완전한 자격을 구비한 실향민이 될 판인데 그깟 당뇨가 무슨 대수겠는가, 마시고 또 마시다가 눈을 뜨니 익숙한 주정뱅이의 아침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레조의 창 밖으로 산의 굴곡에 뿌리박힌 철탑이 보였다. 앙상한 골조의 트러스로 엮인 철탑 사이에 빨랫줄처럼 걸쳐진 전선電線이 고통스럽게 감겨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