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위에서만 역사와 문화이론을 연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만,
어찌어찌하다 우리역사 근대사초입(조선말)의 강화도를 무력 침공한
외세(병인, 신미양요와 운요호사건) 침략행태를 집중조사하면서 ‘강화도 화승총’이란
실물(實物)에 대한 매력과 그에 관련된 문화연구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 화승총은 우리 가슴에 피멍으로 박힌 근대역사를 생생히 증언하는,
19세기 후반 강화도방어 조선군의 처절한 혼백(aura)이 오롯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페리제독의 흑선(黑船) 함포시위와 미군병사의 무장에 지레 겁먹어
고개를 조아리며 문호를 개방한 일본과는 달리, 신미양요(1871년) 당시
강화도 조선수비군은 16세기식 화승총으로 최후의 한 명이 산화할 때까지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진지를 사수했습니다.
쌍방전투라기보다는 미군의 일방적인 학살이었지요.
사거리 50야드(45m)가 채 안 돼 '제멋대로 튀는' 활강 화승총은,
200야드(180m) 이상까지 사람의 이마를 정확히 조준 사격하는 미군개인화기
레밍턴(rolling block)이나 스펜서 7연발 라이플(鋼線銃)과는 애초에 상대가 안됐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차라리 숭고한 의식(儀式)이었습니다.
미군참전병사의 기록에는 "조선군은 호랑이처럼 용맹했다"고 했습니다.
당대 세계최고의 미군화력을 코앞에 두고 강화도조선군은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화승총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이후, 짐작하건데
수 십 만 자루 이상의 화승총(조총)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제작연대와 제작처가 확실히 밝혀진 유물은 거의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제국(1901년) 강화도 화승총'이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나마 이 화승총은 2010년 한 재일동포 독지가가
일본현지에서 구입, 기증한 것입니다.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한제국 강화 화승총>
1543년 포르투갈의 한 상선이 항해중 태풍을 만나 일본 큐슈 남단의
타네가시마섬(種子島)에 피항하게 됐는데, 일본 현지인들이 화승총에 유난히
관심을 갖자 총 두자루를 무려 은(銀) 2천관(7,500kg)이나 받고 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게 바로 동아시아 최초로 일본에 전래된 유럽 화승총이었습니다.
타네가시마총(種子島銃)은 일본에 건너간지 십여년만에 현지에서 대량복제됐습니다.
임진왜란때 한반도를 침공한 왜군의 기본화기 뎃포(鐵砲)가 그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조선조정도 뎃포를 모방생산, 조총(鳥銃)이라 이름붙이고
조선군 기본화기로 보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 일본에 전해진 첫 유럽화승총, 타네가시마총(種子島銃). 일본 무기박물관 소장>
그로부터 3백여년 후.
한반도를 넘보는 외세의 무력시위가 끊이지않던 19세기 말.
가슴 아프게도...
그때까지 우리 조선군은 16세기 화승총으로 무장하고있었습니다.
"1901년 강화무기고에 소장됐던 총" 이라는 명문이 적힌 대한제국 강화 화승총(윗사진)은
16세기 일본에 전해진 타네가시마총(아래사진)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겉모습 뿐 아니라, 기능이나 성능도 똑 같습니다.
두 화승총 모두 총열외부에 설치한 'ㄷ'자 평용수철(일본인들은 '平カラクリ'라 호칭)의
탄력으로 방아쇠가 작동하여 심지불을 댕긴, 초기화승총의 전형이었습니다.
한일양국은 16세기부터 나란히 서구 화승총 베끼기 경쟁에 나섰습니다만,
조선은... 300년이 지나도록 "그 모습 그대로" 단 한 차례의 총기성능 개량도
시도해보지 않고 신미양요(1871년) 를 지날때까지 조선군 개인화기로 썼습니다.
참...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대한제국 강화 화승총입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때문에 복원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과 100여년 전 "처절하리 만큼 숭고했던" 강화도수비
조선군의 넋을 오롯하게 되살려보고 싶은 욕구지요.
지난 1년 반 동안 (혼자만의) 화승총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아시다시피, 국내의 화승총에 관한 민간차원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어서
주로 서구화승총(matchlock)과 일본 뎃포(鐵砲)를 중심으로 리서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라고 해봤자 '걸음마 수준'임을 고백합니다.
기본조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복원작업은 본궤도에 진입했습니다.
몇달 전 강화 화승총에 관한 연구취지를 국립중앙박물관 측에 설명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정식으로 '복제허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8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열람실에 화승총 실물에 대한
정밀실측을 마쳤고, 지금은 정밀기계 제작경력 50여년의 장인(匠人)이
구한말 제작방식 그대로 총신을 주물제작하고 총목(銃木)을 깎는
복원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관련포스트 => http://www.collgap.com/_yellowsea/main_yellowsea_02_136**

<사진 : 강화 화승총 복원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실물을 정밀측정하고 있는 장인(匠人)>
'강화 화승총'이 원형대로 복원되면 -
앞으로 하고싶은 일이 참 많습니다. ^^
총기성능과 관련된 제 요소의 스터디는 물론
실제사격 테스트까지 진행나갈 작정입니다.
그리고, 화승총 사격동호인을 위한 국내사격대회를 만들고...
국제 화승총사격대회(꽤 유명한 대회가 많습니다) 등에도 한국대표를
선발하여 출전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19세기 화승총역사와 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도 싶고요... 그렇습니다.
(물론, 화승총소지는 총기소지허가가 기본입니다)
강화 화승총 복원작업을 계기로,
동호회 형식의 연구회결성이 매우 절실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화승총관련 여러 '주변시스템'의 이해와 실제사격 등을 체계적으로
리서치하고 연관된 우리 근대 역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혼자 힘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화승총은 고식총(古式銃)이어서 앤티크 취급을 받는 경향이 있긴하나,
지난 수백년간 세계각지의 전쟁에서 실제로 쓰였던 '총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속에는 흥미진진한 세계의 중세-근대사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