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용가치 없으니 침투수송 중에 죽여라!” 2002/09/19 현승만기자 신생화기자 한국전쟁당시 H.I.D북파공작원 임덕삼 옹(78세) 충격 인터뷰 뉴스비젼21은 H.I.D북파공작원의 문제를 다루면서 북파공작 임무가 한국전쟁발발당시 전, 후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을 알아내고 현재 생존해있는 그 당시 북파공작원들을 찾아 나섰다. 북파공작원들은 그들의 '활동 내용을 비밀로 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회로 나오기 때문에 기자가 당시 북파공작원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일을 수소문한 끝에 민간 H.I.D유족동지회의 도움을 받아 당시 북파공작 실무책임자로 활동했었던 임덕삼(78세)옹을 어렵게 만났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는 인자한 모습이지만 몸이 조금 불편해 보였다. 임덕삼옹은 한국전쟁당시 HID북파공작원 중대장으로 활동했었고 당시 임추삼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임옹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기자는 무신 기자! 새끼들 다 필요없어 죄다 거짓말만하는 놈들이 무신 기자야!" 임옹은 그동안 언론에 대한 불만을 기자에게 쏟아냈다. 주변에서 한참동안 안심을 시킨 후에야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고 임옹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잊혀져 있었던 한국사의 뒷이야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뉴스비젼21에서 단독 입수한 H.I.D북파공작원 근무확인서에는 44세에 포섭된 명단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무슨 임무를 맞았는가? “그 전에는 내가 직접 북에 들어가서 무장첩보활동을 하다가 빨갱이도 많이 잡고 전과도 많이 세웠어. 내가 중대장이 되면서 미군군함을 타고 다녔는데, 북파 첩보 활동에는 미군군함이 동원됐었어 나는 거기서 주로 보트를 타고 목적지까지 북파공작원들을 대려다줬어 그게 내가 주로 맞은 임무였지” 한국전쟁당시 미국이 참전하면서 한국군의 군작전지휘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북 첩보활동을 미국이 주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일수 있었다. 또한 HID창설에대한 많은 부분이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평시작전지휘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당시 북파공작 임무는 침투조와 첩보활동조로 나뉘어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침투조는 해안선까지 첩보조를 이동시켜주는 임무고 첩보활동조는 직접 북에 들어가 첩보수집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임옹은 이야기를 하면서 정보사의 비인간적인 문제점들을 언성 높여 이야기하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춰 기자에게 들릴 정도로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보사에서는 원래 한3번 써먹다가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받으러(침투했던 대원을) 가질 않았어, 위에서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쩔 수 없잖아. 가고 안 가고는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일단 배를 타고 나가면 그때부터야 내가 상황을 보고 배를 대겠다, 안대겠다, 판단하지만 상부에서 데리러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정보부대라는 것들의 본질이 그래, 나도 몇 번 명령을 받아보고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했어 아마 데리러가지 않은 대원들은 대부분 죽었을 꺼야” 임옹은 잠시동안 망설이다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거는 진짜 국가적으로 비밀인데, 정보사에서 하는 짓이 너무 하니까 내가 다 말하는 거야. 내가 배를 태워서 데리고 가다가 같은 HID부대원을 총으로 쏴서 죽인 적도 있어, 물론 상부의 명령을 받아서 행한 것이지만… 다른 때는 목선(나무로 만든 배)을 타고 가는데 그때는 발동선을 타고 갔었어 가기 전에 미리 돌멩이를 새끼줄로 감아서 준비해두고 밤에 다들 자라고 해놓고 총으로 쏴서 돌멩이에 감아서 바다에다가…. 사람이 할 일이 못되지… 사람들이야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하지. 아무리 전쟁상황이라고는 해도 쓸모 없으면 그냥 각서 받고 내보내면 되는거 아니야? 그런데 꼭 죽이라고 명령이 떨어져 아마 2중 간첩 되는게 걱정 돼서 그랬을 거라고 짐작만 하고 있어. 나도 무장 침투도 많이 하고 전투도 많이 했는데, 나도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됐으면 동료들 시켜서 죽였을 꺼야” ▲부상은 어떻게 당한 것인가? “한번은 침투를 하다가 발각이 됐는데 조명탄이 터지더라구 그런데 안들어 갈 수도 없고 바다에서 죽을 수도 없고 육지로 들어가자마자 기습을 당했어 그때 우리가 40여명정도 됐는데, 기습을 당해서 3명밖에 안 남고 다 죽었어, 그때 내가 허리에 수류탄 파편을 맞고 ‘사쿠라탄’이라고 있는데 그게 내 볼에 맞았어, 그거는 사람 몸에 맞으면 좌우로 퍼지는데 그거 땜에 눈이 멀었지, 그리고 어깨에 또 총상을 입었어, 그래서 40리 길을 피를 흘리면서 부대로 복귀했지 그런데 그놈들 치료도 안 해줬어 병원에 가잔 말도 안 했어, 그때 빨리 치료했으면 이렇게 불구가 되지는 않았을 꺼야. 전쟁당시에도 일반사병은 병원에 입원시켜주고 그랬는데…. 나는 이제 쓸모가 없는 사람 아니야? 그냥 나가라고 그러더라구 그러니까 피난 나온 사람 중에 소화제도 팔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한테 페니실린을 얻어서 그거나 맞고 그랬어” ▲사회로 나오시면서 아무런 보상이 없었나? “보상? 보상은 무슨 보상, 치료도 안 해 줬다니까. 김일성이가 내 목에 현상금을 걸었었어 그 당시에 어마어마한 돈을 현상금으로 내 목에 걸었다니까? 그만큼 내가 많은 일을 했었어. 그런데…” 임옹은 역정이 나는지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나올 때는 각서를 쓰고 나왔어 ‘만약 내가 여기서 있었던 일을 남에게 발설하면 3대가 망할 것이다’ 라는 각서를 쓰고 나왔지. 죽지 않고 그곳을 나온 사람들은 다 쓰고 나왔어 지금도 우리 아들은 내가 무슨 부대에 있었는지 몰라. 나는 그렇게 나라를 위해서 고생하고 전투 중에 부상당해서 지금도 팔 못쓰지, 눈은 안보이지, 몸에는 파편 있지…, 이렇게 돼버렸다고. 나는 부상당하고 아파 죽겠는데 병원은 무슨 병원, 그냥 나가라고 그러는 거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나는 지금 보상 같은 것 필요 없어, 정보사계통에 높은 놈 칼로 찌르고 나도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 이게 바로 대한민국 H.I.D야, 내가 죽을 때는 나 혼자 안 죽어” ▲불구의 몸으로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생계를 꾸려갔는가? “사회에 나와서도 누구한테 맞으면 고소도 못했어 지금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보상해달라 그러지만 나는 이런 날이 올 줄도 몰랐어, 내가 몸이 이러니까 집사람이 막노동을 해서, 벽돌을 날라서 돈을 벌어왔어…“ 그때 죽었으면 내 몸이야 편하지, 이렇게 고생도 안하고 그랬으면 내가 귀신 돼서 정보사놈들 싹 잡가가면 되잖아, 그거 못 한 것이 한이야. 지금 정보사에서 일하는 놈들이 내가 활동 할 때 태어나지도 않은 놈들이야 죽을 고생 한거는 내가 자원 한거니까 그렇다고 쳐도, 왜 사람이 먹고살게도 안해주냐고, 내가 사회에 나와서 누구한테 얻어맞아도 아무 말도 못했어 경찰서에 가서도 그냥 노동(공사장인부)해먹고 사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사정하고 그랬어…(잠시 말을 잊지 못하다가)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우리 집사람만 알아 내가 활동 할 때 중대장이었는데 아작도 아들한테 떳떳하게 군대갔다 왔다고 말을 못해. 우리 집사람도 북파공작원 이었는데 내가 부상당했을 때 다른 사람이 다 죽었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 저 양반이(아내를 가리키며)내 머리카락을 잡고 배에서 끌어내서 피 범벅된 나를 간호하고 날 살렸어 나한테는 생명의 은인이지, 그때부터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부부로 살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가유공자대우가 충분히 되는 것 같던데? “국가유공자? 다죽어가는 사람 치료도 안해줬다니까 무슨 국가유공자야. 먹고 살길도 나라에서 다 막아놨다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이제 보상 같은거 필요 없어.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돈 욕심을 내겠어? 계속 이렇게(정보사에서) 나오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이제 나는 후배들이나 떳떳하게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써먹을 땐 언제고 나라에서 지나라 국민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이건 나라가 아니야“ 기자는 감정이 격해지는 임옹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임옹은 50년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때의 억울했던 심정을 누르지 못했다. 임옹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한국전쟁 전, 후 당시의 H.I.D대원들은 제대로된 훈련을 받지않고 북파공작임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 정보사는 북파공작임무를 많이 수행했던 대원들의 활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사지로 내몰아 전사를 방조하거나 침투중에 사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H.I.D북파공작임무를 수행했던 대원들의 보상문제는 창설당시부터 70년대 중반의 대원들 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기자는 임덕삼옹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국가가 개인에게 자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권유린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이나 이념적인 문제야 어찌되었건, H.I.D대원들은 대한민국 정부를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가는 그 사람들을 철저하게 유린했고, 또한 그 역사가 지나치게 깊다. 뉴스비젼21이 50년전, 역사속으로 사라질 뻔한 이야기를 다시 들추어내는 이유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 역사 때문에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라는 표현을 쓴다. 현재 생존해있는 대한민국 HID북파공작원들은 정부입장에서 분명 새끼호랑이 일 수 있다. 기자가 HID북파공작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이들은 한결같이 국가에 대한 걱정에서부터 시작한다’라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호랑이우리에 들어가 조용히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태도는 이들을 더욱 자극하고 성나게 해, 우리에서 뛰쳐나오게 만들고있다. 호랑이새끼를 야수로 변하지않게 하는 것은 이제 정부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