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U 특수공작요원들은 대북과 국내 첩보활동을 전개했다. 대북첩보활동으로 1955년부터 1971년 까지 약 200회의 특수공작임무를 수행하였다. 첩보활동은 공작원파견 침투와 접수귀환, 잔류공작원보급 및 지원수송, 공작원 교육훈련, 북한군해군 경비병납치 및 기습공격, 북한군 통신망 도청, 북한군 군사시설 기습파괴및 후방교란, 정찰, 폭파,요인납치, 암살 등이였다. 30여회의 국내공작은 주로 북한 간첩선과 간첩체포공작이였다. 1960년부터 1966년까지 아산만, 군자만, 계화도, 변산반도, 무안해안 등 서해도서 벽지와 해안가에서 공작이 이뤄졌다. 한편 U.D.U는 타 기관과의 합동공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30여회의 한미합동공작과 10여회의 중앙정보부 공작등 당시 자유중국 대사관 위탁공작으로 중국본토공작등 10여회의 합동공작을 수행하였다. 현재 외국기관과의 위탁공작의 기록은 전무하며 당시 공작에 참여한 생존자의 증언으로 계속해 내려오고 있다. (동지회 자료수집) 또한 중앙정보부등 타 기관과의 합동으로 벌인 공작기록도 찾기가 쉽지않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중앙앙정보부는 7국에서 각군 첩보부대를 관리했지만 보고채널을 하급기관에서 알기란 어려운 일이였다. 물론 합동으로 수행한 공식기록은 미국 정보당국과 중앙정보부의 문서기록에 보관하고 있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보안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공작활동를 수행한 U.D.U는 전공에 따른 승리만 있었던 것이 아니였다. 육군 첩보대 H.I.D의 양적 규모에 비해, U.D.U는 최정예 극소수 대원들로 조작된 부대로서,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비밀특수공작을 묵묵히 수행해 국가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며, 또한 그 임무 수행과정중에 많은 희생자를 낳아 지금도 유가족과 선.후배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