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람보도 그린베레임

 

 

 

 

 

그린베레



그린베레(Green Berets)는 미 육군특전부대(Army Special Forces)와 그 대원들을 상징한다.



우리에게는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미육군특전단의 부대명은 그린베레가 아니라 'Special Forces'이다.

육,해,공 군별까지 완전히 다 붙혀서 말하면 ( U.S. Army Special Forces ) 가 되지만 대부분의 육군의 부대가 그러하듯 굳이 육군이라는 말을 더 덧붙히지 않고 일반적으로 그냥 짧게 Special Forces 라 부른다.





● 임무



1. 비정규전Unconventional Warfare(UW)

2. 직접 작전Direct actoin(DA)

3. 특수 정찰Special Reconnaissance(SR)

4. 외국의 내부의 방어 (FID)

5. 대테러임무(CT)

6. 심리작전(PSYOP)

등등 특수전에 해당하는 모든 작전을 그 임무로 하며 타국가의 군대양성과 지도 역시 그들의 임무 중에 하나이다.





● 편성



제1특전단-- 워싱턴의 포트 루이스에 주둔, 한국과 일본에도 파견. 작전지역은 태평양과 동-아시아이고, 대테러임무 델타분견대가 있다.

제3특전단--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그래브에 주둔 카리브해와 서아프리카 담당한다.

제5특전단-- 캔터키주의 포트 캠벨에 주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가 작전지역이다.

제7특전단-- 포트 그래브에 주둔 중.남아메리카 지역이다. 파나마에 C중대가 있다.

제10특전단-- 콜로라도 카슨에 있으며, 유럽과 서아시아가 그 작전지역이다. (제19. 20특전단은 예비역이며, 주방위군임무를 수행하고, 전시 증원 그룹이다.)

 

프레데터에 아놀드 또한 그린베레로 설정되어있다





● 역사



미특전단 그린베레의 소수 팀이 아프간전에서 탈레반군과 알카에다요원 1천300여명을 괴멸시키고 적군탱크 50여대를 비롯한 중무기를 파괴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 2002년 1월8일)



미특전단 그린베레 아프간전의 핵심 임무를 맡다. 그것은 소수 팀들이 침투하여 적진 한가운데에서 대담하게 폭격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마자르-이-샤리프 탈환작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돌파구였다. 바로 그것을 계기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카불·칸다하르 등 탈레반 세력권의 주요 도시들이 줄줄이 함락됐고, 결국 탈레반 정권은 붕괴하고 말았다. 이것은 美 육군 최정예부대 특전단이 거둔 극적인 승리였다.

-----------------------------(뉴스위크 2002년 1월16일)



아프간 전쟁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그린베레의 출발은 195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대전 중 적국에서 기간에 관계없이 비정규전적인 게릴라 활동을 펼치며 많은 전과를 거둔 `그림자 전사'인 전략사무국(OSS)을 해체시키고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했다.

그러나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미 육군에서는 여전히 OSS적인 부대를 더욱 필요로 했다.



1952년 미 육군은 특전부대를 창설하고자 했다.



창설의 주역은 OSS 출신의 아론 뱅크 대령과 러셀 보크만 대령. 그들은 비정규전적인 게릴라 형태의 부대를 미 육군에 적용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뱅크 대령은 창설을 위해 부대원을 모집하는 데 있어 신병들을 원하지 않았다.

2개국어 이상 구사능력과 계급은 하사관 이상, 기본적으로 공수낙하 능력 등 뛰어난 체력과 전투기술, 경력은 물론 지식, 사명감을 요구했다.

까다로운 조건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매우 특별한' 것임을 쉽게 알게 해준다.



때문에 1952년 6월19일 포트 브래그에서 최초의 특전부대인 제10 특전단이 10명으로 창설 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전단에는 수백명의 지원자들이 몰려들었으며, 육·해·공 어디를 통해서든 적 종심 깊이 침투, 기간에 관계없이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원들이 충분히 확보됐다.



철저히 부대임무와 수행능력에 맞춘 부대원 선발과 교육훈련은 그들 스스로 미 육군의 엘리트 중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고 육군 당국 또한 충분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제10 특전단은 1953년 첨예한 냉전의 현장 서독으로 파병되었으며, 일부가 남아 곧이어 창설된 제77 특전단(1960년 창설된 7특전단의 전신)의 근간이 되었다.

오키나와에 위치, 극동지역에서의 작전을 담당하는 제1 특전단은 1957년 창설됐다.



이 즈음인 1958년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는 12명의 `A(알파)-팀' 또는 `A-분견대'가 기본 임무수행 단위부대로 정립돼 `소수정예'를 과시했다.

그러나 특전대원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한층 드높인 장본인은 1961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40대의 젊은 존 F 케네디였다. 케네디는 세계적으로 게릴라의 활동이 빈발했던 당시 그 게릴라를 제압할 방법을 군이라는 조직에서 찾았고, 그중 특전부대가 이상적인 수단임을 깨달았다.



케네디는 특전부대의 확대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61년 9월부터 제5, 제8, 제6, 제3 특전단이 잇따라 모습을 보였다.

케네디의 이같은 특전단 확대 지시는 특전단에 대한 신뢰의 한 단면이지만, 훗날 이들의 교육기관인 특수전센터·학교 이름에 케네디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특전대원들의 내면을 파고드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거기에는 케네디의 `그린베레'가 있었던 것이다.



1961년 1월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존 F 케네디는 포트 브래그를 방문, 제18공정군단 예하 제82공정사단 등을 사열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가 더욱 좋아했던 것은 `특전부대(Army Special Forces)'였다.



케네디는 특전부대 증설 및 창설을 지시한 후 그 해 10월12일 이 일로 분주한 포트 브래그를 찾았다.

그는 특수전센터 지휘관 야보로 준장이 쓰고 있는 그린베레를 보고 “장군, 멋지군요. 그 베레를 좋아합니까?”라고 말을 건넸다.

야보로 준장은 “예, 각하. 저와 대원들은 오랫동안 원해 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도 한편으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야보로 장군은 상급 지휘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그날도 그에게 빗발칠 따가운 시선을 잘 알면서도 그의 특전대원들을 위해 대통령 앞에서 그린베레를 썼다. 그린베레는 공식적인 군모가 아닌 탓에 포트 브래그의 사령관은 `누구든 걸리면 영창'이라는 엄포와 함께 그린베레 착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야보로 장군은 훗날 “최고의 엘리트 대원, 최고의 엘리트 부대에 부응하는 의미심장한 심벌이 필요했다”고 회고했듯, 비공식적으로나마 오랫동안 특전대원들이 애용해온 그린베레를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아 부대의 자존심과 대원들의 사기를 높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 육군에서 누가 그린베레의 원조인가는 확실치가 않다.

야보로 장군을 비롯한 1950년대의 특전대원 일부가 관련 기록을 남기거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구전시켜왔지만 누가 처음으로 그린베레를 썼는가, 또는 누가 최초로 아이디어를 냈는가에 대해서는 일치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에서 그린베레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1953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시 제10특전단에 소속된 OSS 출신의 허버트 브루커 소령이 주인공이었다.

부르커 소령이 독일로 파견을 나가자 그를 유심히 봐오던 제77특전단의 로즈 피젤 중위가 그린베레를 구해 그의 팀원들과 함께 훈련장이든 어디서든 그린베레를 쓰고 다녔다.

이후 특전대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포트 브래그의 `스모크 밤' 언덕은 그린베레로 가득찼다.



베트남전은 그린베레 특전대원들의 무대가 되었다.

장기간 세계 어느 곳에 투입돼더라도 외부의 지원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들은 주요시설 타격을 비롯해 민사심리전, 전투교육훈련 지원, 심지어 교량건설, 의료지원까지 수많은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미국 군대가 쌓는 업적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케네디의 말을 현실화하듯 수많은 영웅과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후로 특전부대의 작전지역은 더욱 넓어졌다.

중남미의 군부독재정권을 돕는 암살, 납치, 사보타지 교육 등도 있어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1980년대 도미니카 내란 예방 등 과테말라, 콜롬비아 등지에서의 작전은 특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 년에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소련군에 대항하는 무쟈히딘(이슬람게릴라)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현대전술과 스팅거 지대공유도탄 사격을 가르쳤다.


1989 년에는 파나마 침공에 참가하였다 .

1991 년의 걸프전쟁에서는 이집트군 코만도부대를 훈련하였고 이 전쟁후에도 소말리아에서 반아이디드파 조직에게 훈련을 시켰으며 무기를 공급하였다 .

2001 년 아프간전에 참가하여 테러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운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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