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올린적 없지만 다음에서 보고 하도 어의가 없어서 이렇게 남깁니다. http://agoraplaza.media.daum.net/petition/petition.do?actoin=view&no=12841&cateNo=241&boardNo=12841 서명하고 왔습니다. 저는 지난 2005년 4월 25일 쯤부터 동년 12월 28일까지 계약직으로 서울 경인중학교에 영어담당 교과지도와 교육정보부서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학교에서의 회식은 자주 있었으나 주로 교육정보부서 회식이었으며, 회식 날짜는 1주일쯤 전부터 교육부장 P교사로부터 미리 통보를 받았었습니다. 장소는 거의 회식당일 출발 전까지 확인 할 수 없었으며 주로 회식장소 선택은 회식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정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동하면서 알려주었기 때문에 미리 장소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늘 “왜 미리 알려주지 않느냐?” 는 저의 질문에는 늘 “우리는 원래 그런다. 가보면 안다. 안가면 학교책상 빼버릴 거다.“ 라는 농담 섞인 말들로 늘 그런 식의 회식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회식장소는 학교 주변 혹은, 제가 거주하고 있는 신림동 근처였으나 부서연수 일 때는 먼 곳까지 나간 적이 3~4회 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2006년 1월 9일의 회식장소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늘 식당이나 음식점이었던 회식장소와는 달리 같은 교육정보부서 체육교과 담당 W 교사의 집이었습니다. 그날 역시 회식 날짜는 미리 교육정보부서 P 교사로부터 통보를 받은 상태였으나 장소는 알려주지 않았으며, 그날 오후 4시까지, 학교로 오라는 P교사의 문자를 확인하고, 실업급여 신청 때문에 늦을 것 같다는 답장문자를 보냈습니다. 두 번째로 p부장의 문자는 늦어도 괜찮다는 문자를 받았으며, 실업급여 신청을 끝내고, 연락을 취했을 때 오후 4시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회식장소가 W교사의 집이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회식장소가 내키지 않아 남자친구에게 회식 참석하고 싶지 않다고 전화를 했었습니다. 사실 계약 기간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회식에 참석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같은 부서 교사들이 저에 대한 송별회 겸 회식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P부장이 알려주었기 때문에, 아울러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그 학교에서 2005년 9월쯤에 교장선생님께서 퇴임하시고 새 교장선생님이 오시면 2006년 1월부터 계속 교사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다“ 는 말씀을 2005년 여름방학쯤에 들었던 상태였으므로 어쩌면 지속적인 친분유지도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교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 P부장의 차를 타고 광명시 철산동 W체육교사의 집으로 회식 참석자는 교육정보부서 교사들 중 도덕교과 J교사만 빠진 상태였습니다. 늘 회식자리에 참석하고 빠진 적 없는 도덕교사에게 학교에서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3명의 남자교사 P부장, W 체육, K기술교사 와 저만 우선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P부장의 차로 광명시 철산동 W체육교사의 집으로 이동하던 중, “뭐 먹을게 있다고 왕한진 교사의 집에서 회식을 하느냐?”는 본인의 질문에는, “글쎄..”라는 짤막한 대답 뿐이었습니다. W 교사의 집에 도착해서는 음식과 소주를 식당에 시켜서 회식자리가 시작되었고, W 교사의 TV위에는 몇 병의 양주가 있었으며, K기술교사가, “오늘 누가 날 잡은거야?” 하는 말을 했으며, W체육의 “ 부장님요” 라는 말에 이어, 분명 제 송별회 겸 회식이라고 다른 교사들에게도 알린 줄 알았는데,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K기술교사가 제게 “남자친구는 잘있고?” 라는 질문을 했고, 저는 “지방에 있어서 자주 못봅니다.” 하고 대답했고 그냥 웃고 지나쳤습니다. 소주 3병을 4명이서 마셨는데 저는 그날 식사이후라서 속이 조금 거북했고, 회식자리도 내키지 않는 자리였으므로 불편한 마음에 2~3잔정도 마셨습니다. 뒤이어 TV위에 있던 발렌타인 술을 마시게 되었고, 평소에는 제 술잔이 비어있어도 신경을 전혀 쓰지 않던 사람들이 그날은 유난히 제게 술을 권했던 부분도 많이 불편해서 적당히 있다가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회식이 있다고 전날 알렸던 사실이 있었으며 술을 많이 마실지 몰라서 걱정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평소 회식 때처럼 자정 전 보다 조금 일찍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술이 많이 오가긴 했지만 기억을 놓을 만큼 많이 마시지 않도록 했으며,뒤이어 P부장의 “발렌타인 다 마셨으니 XQ나 마시자”는 말과 함께, “꼬냑은 데워 먹어야 한다. 추운지방 사람들은 보통 꼬냑을 데워먹는다더라.”는 말과 함께 집주인인 W교사와 함께 꼬냑을 데우러 갔습니다. 아울러 그날 도덕교사도 3명의 교사가 번갈아 가면서 연락을 취했으나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그리고 제가 정신을 잃기 전까지도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J 도덕교사는 회식날짜와 장소를 알고 있었다고 들었던 터라, 날짜는 그렇다고 해도 장소는 오면서 정한 것이 맞는 듯한데 하는 의문도 잠시 들었는데,뒤이어 P부장이 술을 자꾸 권하는 다른 교사들 때문에 회식장소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평소보다 술이 많이 오간 상태라서 2006년 1월 9일 21시20분~30분경 W교사의 집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마치고, 옷을 모두 입은 상태로 남자친구에게 회식오기 전에문자를 남겼던 부분이 생각나서, 전화를 해서 집에 돌아가겠다고 알리는 통화를 했습니다.남자친구 역시 경기도 광명까지 왜 그렇게 먼 곳까지 회식을 간거냐? 면서, 늦기전에 집으로 돌아가라는 얘기를 했고, 집에 돌아가겠다고 대답하고 화장실 문을 나서는 순간 기억을 잃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주위는 몹시 어두웠고 아무도 없었으며 회식자리에서 하반신의 옷은 속옷까지 모두 벗겨진 채였으며, 윗옷 속옷도 모두 벗겨진 채로 V넥 부분이 심하게 찢어진 니트만 입은 상태였습니다. 평소 잠버릇이 엎드려서 자거나 손으로 배를 감싸 쥐고 자는 자세와 달리, 누군가 짓누른 것처럼 약간의 통증이 손목에 있었으며 아이들이 만세를 하는 자세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몸을 가누어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집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뜻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머리에 심한 통증이 동반되고 어지러움과 특히 뒤쪽 머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뒤이어 속옷을 찾으려고 둘러봤을 때 찢어진 채였고, 실업급여 신청하러 갔을때 치마를 입고 나갔었으나 날씨가 너무 추웠으며 회식시간에 늦어서 바지로 갈아입을 때 검은색 팬티스타킹을 바지 안에 입고 왔었는데 점퍼와 가방을 두었던 자리에 스타킹과 바지가 함께 있었는데 그위에 제 팬티가 찢어진 채 놓여 있었습니다. 뒤이어 심한 어지러움 증과 두통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다시 정신을 잃었으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지 알 수 없으나 정신이 잠시 돌아왔습니다. 그때 집주인인 W체육교사가 제 다리를 벌려 붙잡고 일을 치루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고, 몸을 움직이고 비명도 지르고 싶었고 다리를 움츠리려 했지만 전혀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마치 제 몸이 아닌 것처럼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며 혀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뒤이어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으며, 이후 시간이 지나 정신이 다시 돌아올 때 쯤 인기척을 느꼈고 몸을 움직여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난 일 때문에 그사람이 저를 죽이지나 않을 지 너무 두렵기도 하고 그냥 자는 척 하고 있었는데, W체육교사가 들어와 제 하반신에 스타킹과 바지만 입혀서 다른 방으로 저를 들어 옮겼습니다. 심한 두통과 구토증상이 동반 되었고 어지러움 증상이 가시지 않았으며 다시 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얼마정도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던 터에 W교사가 “집에 안가요?” 라는 말과 함께 제 허리를 부여잡고 흔들어서 깨어났으며, 시간이 얼마나 되었느냐고 제가 물었을 때, “오후 1시 반쯤 된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머리에 심한 통증과 어지러움, 구토증상을 느껴 화장실을 갔으나 용변을 볼 수 없었으며, 아랫배가 몹시 아파왔습니다. 겉옷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엎드려 한참동안 고통이 사라지길 기다리며 머리를 부여잡았으나 쉽사리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 때 W교사는 아무 말도,어떤 행동도 없었습니다.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고, 무슨 일을 더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택시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택시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말과 함께 밖에 나가면 택시 많이 있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힘을 내어 대문을 나섰으나 어지러워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습니다. W교사도 함께 나오긴 했으나 부축해주려는 모습을 잠깐 보였으나, 부축은 없었으며 밖에 나오는 동안 2~3회 헛구역질과 구토를 했으며 두통이 너무 심하고 어지러워서 몹시 힘들었습니다. 택시를 잡아 줘서 택시를 타고 서울 신림동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와중에도 두통이 너무 심해서 택시 안에서 누워있다시피 했으며, 택시 안에서도 구역질과 함께 구토가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으며,택시에서 내리고 집에 올라오기까지 거의 기다시피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누우려 했는데 뒤쪽 머리가 몹시 아팠으며 물을 마셨으나, 이내 토할 수밖에 없었고 심한 두통과 함께 뒤쪽 머리부분을 베게에 지탱하는 것조차 힘들었으며, 하복부와 전신에 통증이 있어서 몹시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저녁때 쯤 샤워를 하려고 몸을 보는 순간 전신에 피멍자국이투성이었으며 가슴에는 손톱으로 살점이 파인자국과 오른쪽 유두부분의 통증과 다리 쪽의 묶인 듯한 흔적을 확인하고, 전신에 고통이 그 상처들 때문임을 인지하였습니다. 제 자신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머리에 심한 두통이 가시지 않았으며 후두부가 부어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1월10일 P부장의 “집에 아직 안갔느냐? 양주 3병을 다 먹다니 너무했다.”라는 문자가 왔었으나 답신하고 싶지 않았으며, 양주 2병을 함께 먹은 기억밖에 없는데 3병이라는데 의문을 가졌습니다. 다음날 2006년 1월 11일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 수 없었으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성폭력 상담소에 연락을 취했으며, k 상담사의 도움을 얻어 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받았으며, 상해 자국에 대한 촬영을 하였고, 병원진단서를 끊어서 고발하게 되었으며 상담사 말씀이 가해자나 혹은 그 측근들과도 연락을 취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W교사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락은 없었으나 P부장의 문자가 12일에 “어디 다녀오는 길인데 술병은 괜찮은가?” 라는 문자를 받았고, 사건을 수사기관에 조사해달라고 의뢰한 이후 1월 23일까지 연락이 없다가 1월 24일 1~2통의 전화가 왔었으나 제가 받지 않았더니, “전화 안되네요 먼일인지 몰라 궁금하고 걱정되요 전화부탁해요” 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이후 26일부터 W교사의 형과 P부장의 문자가 계속되었으며 주로 내용들은 만나서 얘기를 하자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후 수사기관과 상담소로부터 평소 내내 연락조차 없었으며 이전에도 관심이 없었다고 분명하게 말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는 좋아서 그런 행동을 했다는 식으로 수사기관에서의 거짓된 증언을 일삼고 자신의 죄를 덮어보기 위해 위증을 하면서 "새벽에 옷이 벗겨져 있는 모습을 보고 충동이 일었으나 자신이 그런것같진 않다" 라는 어이없는 진술과 저와 제 가족에게는 잘못했다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시키려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으며 아울러 그날 회식자리에 함께 있었던 W교사와 단짝이나 다름 없었던 P부장의 행적 또한 너무나 의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J도덕교사나 P부장은 그 지역이 연고도 아닐뿐더러 그 늦은 새벽에 J도덕교사가 서울에서 그곳까지 와서 P부장과 새벽시간에 술을 마셨다는 얘기도 어딘지 미심쩍은 행적이며 P부장과 W교사가 사건을 저질을 것을 알고서 그날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게 J도덕교사는 아니었는지 하는 느낌조차 지울 수 없으며 이후 명절인 설날 때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는 않으면서 제 부모님과 친지의 집에까 지 찾아와서 저와 제 아버님을 만나려고 취했던 행동들은 친척과 가족들에게까지 사건을 알리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며 아울러 사건전말을 알게된 가족친지는 저에 대한 모든 기대와 바램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저로서는 집에 더는 있을 수 없어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가 서울로 돌아갔는데 이후 밤 12시만 되면 서울에 있는 제 거주지 우편함에 편지를 두고 간다는 문자와 자신의 넋두리만을 적은 편지들로 밤에 잠조차 이룰 수 없도록 하였으며 무조건 만나자는 뜻의 문자만을 밤낮으로 가리지 않고 보냈었으며 정말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몸서리 칠만큼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제게는 합의를 해도 성범죄범은 처벌을 받기때문에 처벌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선생님의 상처는 내가 돌봐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마치 제가 자신과 결혼을 노리고 그집에 간것처럼 몰아가는 그 파렴치한 모습에 그나쁜놈을 죽이고 제스스로 자살하고 싶을만큼 고통을 느꼈으며 너무나 견디기 힘든 나머지 전세금이 빠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사를 해야 했으며 휴대전화 번호까지 바꿔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이사할 곳도 없어서 보관이사를 맡기고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기때문에 가족에게조차 알리고 싶지 않았고 이미 가족에게 신뢰를 이미 잃은 저였으며 이번일로 더 힘든 일은 저희 가족에게 그들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험한 말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구워삶은 건지 피해자인 저의 얘기를 들으시려 하지도 않고 가해자들의 회유에 흔들리는 모습에 심한 배신감과 정신적 모멸감을 느꼈으며 자살충동을 수차례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저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불안함으로 극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왜 피해자인 제가 죄인처럼 이렇게 숨어 지내야 하는 것이며 그들의 신분이 교사라는 직업이라는 이유 한가지로 구속조차 되지 않고 수사기관의 수사의지로 3번씩이나 구속 심사 신청을 하였다고 했는데 반송되어 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중적인 가해자의 모습과 어느 누구조차 신뢰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만큼 현재의 상황들이 너무나 힘겹습니다. 대체 이 나라 대한민국의 법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 하는 것인가요?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했는데 현재로서는 피해자인 저는 죄인처럼 도망 다니고 숨어 지내야 하며 많은 사람들조차 두렵고 신뢰하기조차 힘이 듭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생활은 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다른 직장을 구해서 일을 해보려고 해도 그들이 저지른 일들이 자꾸 떠올라서 남자들이 있는 회사의 모습 자체에도 적응하기 힘들어져서 하루를 멀다하고 그만두고 새직장을 찾아야 했으며 아직까지 그들은 뻔뻔하게 자신들의 죄를 뒤로 한 채 교단에서 우리의 아이들 앞에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서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참 의문입니다. 죄를 지었는데 벌을 받지 않는다는 지극히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이렇게 벌어진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니 모든 남자들은 한 여자를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어서 강제로 폭행하고 성추행해놓고도 좋아서 그랬다는 말로 합리화 된다면 누구라도 처벌받을 사람은 대한민국 아니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사건을 정확히 알고 싶고 죄를 지었다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잘못했다고 말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뒤로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사기관에서는 죄를 부정하고 제게는 잘못했다고 문자를 보내는 모습들을 보인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어쩌면 이미 자신들이 빠져 나갈 수 있는 모든 방법은 이미 강구 해놓고서 제게 합의를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합의금이 탐나서 고소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좋아서 그랬다면 왜 그때까지 표현조차 하지 않았으며 아울러 제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사실도 알면서 그간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좋아서라면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있는것일까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운날씨에 옷을 찢어서 벗긴채 이불조차 덮어주지도 않고 빈방에 방치하고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강제로 몸을 못가누도록 술에 약이라도 타서 강제로 자신의 욕구를 채워도 된다면 세상에 모든 힘있는 사람들은 다 그런짓을 해도 되는 걸까요? 저는 분명하게 돈이 탐나서 고소한 것도 아니었으며 보다 정확한 사건조사와 재발방지 때문에 시작한 일입니다. 그런데 마치 합의금이 탐나서인것처럼 바라보는 시각도 견디기 힘들며 가족에게서 조차 화김에라도 강간범에게 시집가라는 제 부모의 모습이 너무나도 배신감이 들고 저주스러웠습니다. 저분들이 정말 제 부모가 맞는지 의심이 들정도였구요. 강간범이 우리나라에서 잘나간다는 S대학출신이니까 그런것이었을까요? 판검사님들이 제일 많이 나온다는 같은 대학동문이니깐 처벌도 피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있는것일까요? 강간범은 같은 범죄를 습관적으로 저지른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울러 사회에서도 그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교사라는 이유로 계약직 교사인 저와 같은 여자교사들이 또다시 피해를 입어놓고도 정교사들이 두렵고 단지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 올까봐 참아야 한다면 그들은 또다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 정황으로 처벌할 수만은 없겠지만 많은 사실들이 의문점을 갖게 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들을 덮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에 다시 한 번 분개합니다. 강간이라는, 폭력이라는 이름이 남자대 여자가 아닌 힘이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싸움임을 인지해 주시길 감히 바랍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에게 완력으로 혹은 다른 방법으로 항거 불능 상태에서 자신의 욕구와 쾌락을 채우기 위해서 저지른 일인데도 우리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좋아하기 때문에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쯤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지 아울러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행동을 해도 죄가 될 수 없으며 처벌할 수 없다면 저 같은 피해자는 어떤 방법으로도 구제받을 수 없겠지요. 이번일로 인해 저는 직장과 가족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신뢰까지도 잃었습니다. 어느 누구 어떤 사람이라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렸으며 가해자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저의 몸을 망가뜨린 것 뿐 아니라 저의 정신까지도 망가뜨렸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저의 가족에게까지 심한 배신감을 느꼈으며 저의 정신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망가뜨린 그들과 모든 사람들은 제가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으며 끝없이 저주할 것이며 미워하고 증오합니다. 생계를 위해 직업을 구하고 싶어도 그들이 저지른 일들과 그들의 인신구속이 되지 않아있는 상황에서 분명히 제게 다시 찾아와 저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것이 눈에 보이듯 훤한 상황에서 사회에 적응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 저와 같은 사건이 또 다시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확한 사건조사와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히 두 손 모아 빌어보며 대한민국이 분명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대통령님을 저의 변호사로 선임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일을 당한 사람들의 가족 대부분이 가해자의 회유보다 자신의 가족을 더 챙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행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긴 시간을 싸워야 할지 알지도 못합니다. 아울러 검사님을 믿고 판사님을 믿고 수사기관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도 사건 전부를 밝히지 못하고 그들을 처벌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들을 꼭 처벌하고 싶습니다. 아니 적어도 우리아이들 앞에 서서는 안됩니다. 죄를 지어도 죄를 피해가는 방법을 가르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정말 학교가 어떻게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