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한문은 중국인이 만든 중국의 문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한자의 원조는 은나라의 갑골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역사서들은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비롯하여 주나라 때부터야 비로소 중국 고대사의 확실한 연대를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즉 주나라 이전시대는 자기네 나라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갑골문자의 발굴로 중원 땅에 실존했던 국가였음이 뒤늦게 밝혀지게 될 때까지, 주왕조 이전의 나라인 은나라는 기록과 물증이 없어 전설 속의 왕조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저 유명한 사마천도 <사기(史記)>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의 국가이고 주나라는 한족(漢族) 국가라고, 은나라의 건국시조 설은 동이족이라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주: 중국 한나라의 "한"은 한고조가 우리 민족의 "한"이 좋은 것을 알고 베껴간 것입니다. 한문만 다르게 썼는데... 쉽게 말해서 "표절"이죠. 원래 중국민족은 "지나족"이나 "화족" 이었습니다.) 은왕조는 동이족이 통치하였던 국가였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것입니다. 은나라의 건국시조도, 나라 자체도 동이족의 국가인데 거기서 나온 문자만 동이족이 아닌 한족(漢族)의 문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 한문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완벽한 문자 시스템 - 한문의 근원인 녹도문 또는 갑골문자도 우리조상이 만들었고 거기서 나온 한문 또한 동이족의 문자였습니다. 후대에 한문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중국인들이 문자의 시조라 여기는 창힐 역시 자부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동이족이었습니다. 만물을 형상화한 한문은 신시배달시대의 녹도문자가 뿌리가 되어 탄생한 음(陰)의 문자이며 뜻글자이고, 후대인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가림토문자에서 만들어진 한글은 양(陽)의 문자이며 소리글자입니다. 즉, 뜻글자이자 음(陰)문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이면서 양(陽)문자인 한글을 함께 써야 완벽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문자를 함께 써야만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말할 수 있고, 그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문자를 최초로 발명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렇게 완벽한 문자를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 한자는 과거 없었던 글자를 중국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국시대의 녹도문 이래 동이족들이 세운 은나라에서 쓰던 글자들이 계속 발전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역사에는 한문을 언제 수입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군시대 이후 동이족이 힘이 없어지고, 진나라, 한나라 등 한 족의 세력이 커지면서 한문(桓文)은 한문(漢文)으로 바뀌어졌으며,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며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와 그 문자인 갑골문도 중국의 나라와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한문은 중국의 고리타분한 글자요 한자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라는 비판 속에서, 진짜 기원도 모르면서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한글과 한자를 병용해온 것은 두 가지 문자의 발명국 후손으로써 당연한 귀결이었던 것입니다. 고조선에 한글(가림토 라고도 했음)과 한자가 있었는데 한...글 한...자 (위에 보이듯이 이 두가지를 고조선에서는 "글자"라 했읍니다. "한글"과 "한자"라 하는 것은 "하늘이 내리신 글자"라는 뜻인데 나중에 중국 한나라가 감히 나라 이름을 우리 고대 "한국"을 베껴서 "한"이라 짓고 "하늘이 내리신 자" 라는 뜻의 "한자"를 마치 "중국 한나라"에서 만든 것인양 "한(한나라한)자"로 왜곡한 것입니다. 간이 배밖으로 나왔나 보죠. 한나라 이전에 이미 오래전에 한자가 있었으니 중국 한나라의 역사왜곡이 이미 이러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한문 한 글자를 발음 하나로 할 수 있는데 중국인들은 한글자를 발음 하나로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말하자면 외국글자는 원래 정확히 발음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한자 우리발음 중국발음 水 수 수웨이 學 학 슈에 月 월 위에 한시만 봐도 7언절구, 5언절구가 있는데 지나인들의 발음으로는 한시가 성립되지 않읍니다. 오직 우리나라의 발음으로 한시가 성립되지요 음성언어로서 한국어와 중국어, 문자언어로서 한자와 우리 글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연구서 2권이 출간되었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다른 어족에 속한다거나 한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었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을 뒤집는 내용이다. 경희대 강사인 김지형 박사(국문학)는 '한자 전래 이전 시기의 한국어와 중국어와의 비교'(박이정)란 책에서 서로 다른 어족에 속했다고 알려진 한국어와 중국어 사시에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두 말이 한 뿌리로부터 출발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어는 몽골, 만주 터키와 같은 알타이어족, 중국은 한장(漢藏)어족에 속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김박사는 "상고시대 이전에 6개의 언어 집단이 한국어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중 일부가 중국으로 들어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한자어 213자의 상고시대 발음을 재구(이론을 바탕으로 추정하는 것)해 한국어 300여 개 단어와 비교했다. 예를 들어 '人(인)'자의 중국 상고시대 발음은 '니인'(njin)으로 우리말 '놈''님''남'과 같은 어두자음인 'n' 음가를 갖는다. 또 '河'(하)의 상고시대 재구형 '가르'(gar)도 '강'(江)의 옛말인 '가람'과 비슷하다. 김박사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어족을 가르는 차이는 어순과 성조(높낮이)인데 이는 한자가 전래된 상고시대(BC 1세기) 이후의 일이여 음성언어 단계에서는 같은 말로 볼 만한 발음상의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한편 재야 사학자 박문기씨는 음성학정, 문화학적 근거를 들어 한자가 중국 글이 아니라 우리 글이라고 주장한 '한자는 우리 글이다' (양문)를 펴냈다. 학계에서도 유창균 계명대 석좌교수(국문학)가 1999년 '문자에 숨겨진 민족의 연원'이란 저서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박씨는 한자가 우리 글이란 근거로 한자에 깃든 문화와 관습이 중국보다 우리와 가깝다는 점을 든다. 예컨대 '家'(가)는 집을 뜻하는 면(갓머리)자와 돼지 시(豕)자가 합쳐져 '집안에 돼지가 있다'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돼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풍습이 전혀 없다. 반면 우리는 전라도, 제주도에 이 풍습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글자의 소리를 보더라도 한자가 우리말에 가깝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다. 호흡의 발음만 살펴보아도 우리는 날숨, 들숨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지나인들의 발음은 "흐쓰"입니다. 두발음 모두 날슴입니다. 이렇듯 한자는 중국인들의 발음과는 맞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고 오히려 우리의 발음과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출입(出入)도 중국 발음은 '츄루'로 본뜻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김지형, 박문기씨의 주장은 지금까지 중국문자인 한자를 우리가 빌려 썼다는 일방적인 차용의 관점을 탈피해 두 문화 사이의 영향 관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더욱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약 4만 3천여 자가 옥편 속에 있는데, 글자 하나 하나마다 대개 발음기호가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學(학)'자를 옥편에서 찾아보면, 우리는 '학'이라는 발음기호를 적었을테고, 지나인은 지나인은 한글을 모르니까 자기네 발음기호를 적었습니다. 즉 '할각절(轄覺切)'으로 표시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절切'은 '할각절轄覺切'이 발음기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읽는 방법은 아주 간단한데, 첫글자에서는 자음(ㅎ)만 취하고 두번째 글자에서는 모음(ㅏ)과 받침(ㄱ)을 취해 읽으라는 뜻입니다. (할의 ㅎ + 각의 악 = ㅎ+악 = 학) 이렇게 '할각절轄覺切'로 중국옥편에는 2000년동안 적혀 내려오고 있는데, 지나인은 '學'을 학으로 발음을 못하고 '쉬에'라고 합니다. 지나인은 입성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문자(漢文字)는 지나인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이고, 한민족의 발음으로서만이 완벽히 소리낼 수 있는 것입니다. 100% 우리말로 적혀있는 것이 지나인의 옥편이고, 따라서 우리가 표준어를 쓰고 있는 한문자의 주인공입니다. 한자의 발음중에서 묘한것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국어 몇개만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어 : 일 이 삼 사 오 중국어 : 이 얼 싼 쓰 우 일본어 : 이찌 니 산 시 고 그런데 위의 경우로 보더라도 기초 단어의 자음이 거의 같다고 나타난다. 중세고어와 현대어의 변천과정에 대해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은 독자들은 거의 알수가 있을것이다. 再見(다시보자) 중국어 발음으로 짜이젠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거의 우리말과 유사한 자음으로 시작하는 언어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자음접변, 모음조화, 구개음화의 원리등을 잘 응용해서 보자 중국인의 발음상 혀가 안으로 말려 들어가고 한국인보다 혀가 짧거나 긴 경우 발음하게 되면 어떻게 발음되는지 우리말에서 이가 리로 말음되거나 니로 발음되는 사투리등은 익히 들어 서 알수 있을것이다. 일본어 발음도 역시 일본인의 인체구조상 혀가짧고 받침발음이 약한것을 감안하면 이찌 니 산 시 고 로구(륙) 의 발음구성이 나 우리나라 고어와 거의 같은것을 많이 볼수 있다. 중국어의 기초단어의 발음구성에서 본다면 거의가 혀의 몸통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발음이란것을 알수 있게 된다. 한국어 발음은 대신에 입안에서 상당히 움직임이 큰형태로 나타난다, 한국어로 한자표기 내용을 중국어로 표기할때 혀의 몸통의 힘을 꽉주고 입모양의 크기를 어느정도 억제하고 발음해보라 중국어 발음과 상당히 유사한 발음형태와 유사한 단어가 많이 생긴다는 것을 알수가 있게 됩니다. 민족사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정말 우리 문화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이제부터 한자에 대한 애착도 가져야 합니다. 마치 어떤 탕자의 비유마냥 말이죠. 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돈을 객지에서 다 써 버려서, 남의 돼지우리에 버린 밥껍질로 주린 배를 채우다가 하루는 탄식합니다. '나의 아버지집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많이 있었건만, 나는 객지에서 헐벗고 굶어죽게 되었구나' 하며 깊은 한숨을 쉽니다. 이런 탄식끝에 이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향해 다시 힘차게 뛰어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끌어앉고 맞으며, '내 아들이 다시 돌아왔노라'하며 양잡고 소잡아 축제를 엽니다. 그래서 탕자는 또다시 백만장자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르네상스입니다. 옛집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과연 그런 용기가 있습니까? 옛집을 기억은 하고 있습니까? 옛집이라는 것은 상고사입니다. 이제 상고사를 재확인하고 민족사의 과제인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 마치 탕자가 자기 본래의 집을 향해 돌아가는 것처럼, 바로 이것이 한국사의 남아있는 과제입니다. 자기의 옛집으로 돌아가려면 우선 한문(漢文)을 알아서 민족의 전통을 확인하는 것이 첫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사는 목표가 뚜렷한 근원을 향해서 돌아가는 '민족사의 르네상스'가 일어나야 합니다. 본래 이 말(르네상스)의 어원은 '옛 정통(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되돌아갈 고향의 영광과 위대한 추억이 없는 민족, 향수가 없는 민족에겐 르네상스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퍼온글 http://cafe.daum.net(카페 / 한국고대사)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문자가 만들어진 것은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 而係遠始于寒 的北方. 지나의 서량지徐亮之라는 사학자가 쓴《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세석기細石器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 -細石器文化部族 最初乃居住 今西伯利亞的貝加爾湖附近他 們乃中國傳說中的炎帝神農氏本族 또한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8226;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서량지《중국사전사화》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 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 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요녕성)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산동성)가 그 중심 지역이다」 중국의 학자 왕동령王桐齡이 저술한《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의 기록을 보자. 「4천년 전 (…) 현재의 호북성&#8226;호남성&#8226;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8226;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九麗는 구려九黎&#8226;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고사변古史辯》에서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현조玄鳥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의 조상신이다(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하였고, 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고사변》「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 &#8226;제준帝俊&#8226;제곡帝 &#8226;제순帝舜&#8226;소호小 , 그리고 설契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중국의 학자 노간勞幹 「우리들이 동방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는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인(人)'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오향청언吾鄕淸彦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나라나 주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며, 기자조선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량지《중국사전사화》▶「중국의 책력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나라, 상나라의 동이족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曆法은 사실 동이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小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중국의 학자 필장복은 자신의 저서《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방 인종의 오행 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 ((((((((---민창기---)))))))))********************************************* 몇가지 보완할까요... 상(은)이 동이족이란 것은 오래전부터 중국학계가 인정하는 바였으나 오랜 왜곡으로 단절되어 원로에 국한되고 있다. 한자가 동이문자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무렵 북방계는 청동기였으나 하족은 석기시대였다. 동방대륙사에서 (1911년 이전 중국과 중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그들은 원류를 빙하기를 거치지 않은 남방계 하족에서 찾으나 은제국에 정복되어 소멸했다. 그래서 한무제는 영역내 모두를 한족이라 통칭한 것이다. 묘족은 동이와 갈래가 다르다. 빙하기 후 같이 남하한 숙신(말갈,여진)과 흉노 등 동호족은 부여.예맥족 등 우리와 갈래가 매우 가깝다. 그 중 상당 수는 전성기 고조선연방의 제후국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거론됐으나 학계 힘의 논리에 밀렸다가 이제야 거론되는 새삼스런 것으로 조금 우스꽝스럽다. 유념할 것은 고구려는 상징적 거론일 뿐 그들이 노리는 것은 상고사 전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현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시원을 남방계 하족에서 찾는다면 상고사가 없다..그래서 우리의 상고사를 약탈하려는 것이며 이미 상당수가 이루어졌다. 남방계 전곡외에 신농, 황제는 북방계...그것도 동이계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환)국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때군사정권은 휴전선 이남을 세뇌했고 일제는 한반도로 세뇌했다. 몽골고원에서 난하로 남하한 환국인국의 나라가 한국이라면 한반도 몇배인 간도 뿐 아니라 대륙요지의 대부분이 한국이 되찾아야할 고토이다. 동방대룩의 역사에서 1/3이상이 환국인의 지배사였다. 남방계의 역사는 고작 하.한.당.송.명 정도 뿐이다... 2004/09/05 출처-http://tong.nate.com/o18201/12753358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한자는 처음 동이족이 만들었다?' 한자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그 발생과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중국이 창조자로 알려져있지만 한민족인 동이족이었다는 주장도 종종 제기돼왔다. 한반도주변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는 김성재(46)씨는 “한자의 원형이 된 갑골문을 남긴 은나라 사람들은 바로 동이족의 일파였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주장을 다시 풀어쓰면 한자는 중국인이 만들지 않았으며, 놀랍게도 중국에서 동이라고 부르는 한민족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수년에 걸쳐 집필했다는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펴냄)에는 자칫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런 주장을 단호히 펴는 이유와 논거가 700여쪽에 걸쳐 빼곡히 담겨져있다. 그가 펼치는 논리는 이렇다. 한반도 남쪽 김해 땅의 수로왕 뒷산에 출토되는 글자없는 갑골, 즉 `무자갑골'은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 그리고 일본에까지 분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서만주 발해만 북쪽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곳은 바로 동이족의 근거지였다. 또 지금의 한자꼴은 발해만 지역과 산동반도에서 먼저 나타났다. 그곳은 당시 중국 민족의 뿌리인 화하족의 영역이 아닌 고조선의 영토였다. 발해만 북쪽 홍산문화 토기에 새 발자국 모양의 글자 등 상형문자가 선연히 남아있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고조선 지역의 빗살무늬 토기와 청동 거울 뒷면의 복잡한 기하학 무늬들도 단순 문양이 아니라 글자이거나 글자의 변형이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한자를 우리 민족만의 창작품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한자의 구조로 볼 때 오랜 세월을 두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글자꼴을 갖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선조들이 한자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한국상고사 논쟁에 그 맥이 닿아 있는 듯하다. 먼저 영토 문제인데, 동이족의 활동무대가 산동성을 포함한 하남성 동남쪽 등에까지 광활한 지역에 이른다는 학설이다. 또 갑골문자가 맨 처음 동이족의 땅에서 나온다는 것도 그의 주장에 연결된다. 최초의 농경신인 신농씨가 동이족이며, <한비자> 등의 문헌 기록에 따라 동이족인 순임금이 산동성 역산에서 흑도문화를 일으키고 역시 동이족에 의해 건국된 은나라가 이를 계승한 것도 같은 논리다. 이런 이유로 채색토기 등에 새겨진 기호가 발전해 갑골문자의 원형이 되었고 이는 또 한자의 기원인 동이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내 상고사 연구의 최대 논쟁 가운데 하나인 한자 기원에 대한 이런 주장은 고고학적 연구와 문헌학적 고증 절차를 통한 논증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중국쪽의 역사축소에 가로막혀 그다지 큰 진전을 보지 못해온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지은이는 갑골에 숨겨진 고대사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1700자에 이르는 한자의 연원과 시대별 변천 과정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했다. 여기에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들을 꼼꼼히 훑는 정성을 아울렀다. 작은 단락마다 동굴 벽화와 갑골문, 유물 사진 등 다양한 시각 자료들을 실어 흥미를 더하고, 학술용어가 아닌 이야기체로 서술해 역사소설처럼 읽히는 맛을 낸 점도 책의 특징이다. 홍대선 기자hongds@hani.co.kr 출처- http://blog.naver.com/scha303/146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