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6개월만에 폐암 말기 판정 안태환씨
[오마이TV 2006-01-17 18:00]
[오마이뉴스 문경미] 군 병원에선 '결핵성 늑막염' 진단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지긋지긋한 폐암이 나아 24시간 착용하고 있는 산소 호흡기를 떼면 먼저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이다. 돈이 모이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지금은 숨이 차고 기침이 나와 한 걸음도 걷기 힘들기에 그의 꿈은 더욱 간절하다.

"일본 여행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랑 같이… 학교에서 일본어도 공부했는데…."

그는 꿈을 이야기하며 맑게 웃었다. 지켜보던 부모님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을 훔쳤다.

22살 청년 안태환씨의 꿈이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안씨는 꿈을 꾸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의 고통없는 죽음을 소망하고 있다.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중단한 말기 폐암 환자이기 때문이다.

이미 담당의사는 지난 2005년 12월 안씨가 새해를 맞이하기 힘들 것이라 진단했었다. 이런 사실을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다.

부모님은 충격을 우려해 안씨에게 병의 상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담당의사는 아침 진료 때마다 안씨에게 "곧 좋아질 것"이라는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다. 안씨의 부모님은 생업을 포기하고 "속수무책으로 아들의 꺼져가는 목숨을 지켜보고" 있다.

16일 밤 9시, 안씨가 입원해 있는 부산의 한 대학병원 병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초록색 산소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산소통이 없으면 안씨의 삶도 없다. 침대에 앉아있는 안씨의 머리카락은 이미 다 빠져 있었다.

호흡기를 착용한 안씨의 얼굴에 핏기는 없었다. 손목에는 주사 바늘이 남긴 멍 자국이 선명했다. 혼자 힘으로 호흡조차 힘든 안씨는 묻는 말에 힘겹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희미했다.

"의사 선생님이… 2주 후면 좋아질 거래요…. 엄마도 그랬어요…. 빨리 뛰어다니고 싶어요."

"이등병이 아무 때나 몸 아프다고 말할 분위기 아니었다"

안씨가 말기 폐암 진단을 받은 건 지난 2005년 8월 27일. 입대 6개월 만의 일이었다.

2005년 2월 14일 해군에 입대한 그는 이상없이 훈련소 생활을 마쳤다. 포항 제6항공전단에 배치받은 안씨는 5월부터 숨이 가쁜 증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등병에게 군대는 아무 때나 몸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참았고, 결국 병은 더욱 커졌다.

안씨가 처음 병원을 찾은 건 그해 7월 29일. 그러나 해군포항병원은 안씨에게 폐암이 아닌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내렸다. 2주 가까이 안씨는 그 곳에서 늑막염 치료를 받았다.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국군대구병원으로 후송된 날짜는 8월 12일. 그곳에서 CT촬영을 하고서야 "폐에 종양이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받았다. 8월 23일 그는 다시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암은 치료 불가능 상태로 발전했다.

안씨는 "해군포항병원에 CT 촬영기가 없으니 당연히 진단을 못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암이 말기가 아닌 치료 가능한 상태로 알고 있는 안씨는 "빨리 진단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웃어보였다. 안씨는 흡연자도 아니다.

국군대구병원에서 안씨를 진료했던 군의관 허모 대위는 "처음 군병원을 찾은 후 1개월 만에 민간병원으로 후송해 암을 진단했기 때문에 군병원이 오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군본부도 "안타깝지만 군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다한 것"이라며 "암 같은 병을 군병원에서 진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해군본부는 해군포항병원에서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내린 군의관이 누군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부친 안순호(51)씨는 "군의관의 오진에 대해 책임을 묻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서운한 것은 따로 있다.

"국가가 불러서 군대에 간 것 아닌가. 그런데 이게 뭔가. 군대에서는 입대할 때부터 암 환자였다는 소리도 나오더라. 그랬다면 신체검사에서 면제를 내려야 하는 게 맞다. 누가 언제 거대한 보상금을 요구했는가. 단지 국가를 위해 일하다 저 지경이 됐으니 공상처리를 요구했을 뿐인데…. 병사들이 쓸모없으면 버리는 소모품인가."

젊은이들의 죽음, 왜 계속될까

안순호씨는 아들이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난 뒤 지난해 12월 20일께 공상처리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국방부에 제출했다. 이에 군 당국은 "입대한 지 1년이 안 됐고, 암 발병 원인이 군 생활 때문이라고 보기 어려워 공상처리는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지난 1월초 다시 탄원서를 제출하자 군 당국은 입장을 바꿨다. 공상심사위원회를 다시 열어 최대한 공상처리하겠다는 것. 이에 안씨는 "사람 목숨을 가지고 흥정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들은 죽어가는 데 해줄 게 아무 것도 없어 가슴이 찢어진다는 모친 김정숙(45)씨. 김씨는 "군대에서 몹쓸 병에 걸려 숨지는 병사가 내 아들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고통을 당하는 부모도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 지난해 10월 숨진 고 노충국씨 부친 노춘석씨의 소망과 같다.

기자도 병실을 나서며 지난해 노충국씨에게 했던 똑같은 거짓말을 되풀이했다. "곧 건강해질 것이니, 걱정 말라"고.

고 노충국씨 사망 사건으로 군 의료체계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진 지 3개월. 똑같은 소망과 거짓말, 그리고 20대 젊은이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글-박상규 기자>

(문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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