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1992년 5월이었습니다. '인공기'라는게 북한국기인데, 지금이야 북한사람들이 와서 인공기 흔드는게 TV에도 나오고 그러지만 그때는 그런거 그림만 그려도 큰일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서울 건국대에서 처음으로 통일운동의 일환으로 인공기를 게양하여 경찰이 건국대 학내로 진압하여 치열한 격전끝에 인공기를 수거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고 다시 인공기를 게양하면 엄벌하겠다고 정부에서 공언을 하고 있었습니다(당시 노태우 대통령 시절임) 1992년 5월 8일이었던가 그랬을겁니다 부처님 오신날이었고 여담으로...지금도 기억나는게 그때 미스코리아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는데 부산 기동본대로 전,의경 위문을 왔습니다. 그 당시 미스코리아 미로 당선됬던게 지금도 유명한 탈렌트 이승연 이었지요 하여튼 그날 별일이 없었고 부처님오신날이라 범어사 혼잡경비 나갔다가 돌아와서 야간 방범나가고 점호끝나고 그 시간쯤 됬을겁니다. 행정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중대행정반 중형무전기에서 긴급한 메시지가 흘러나오더군요....'전모 중방 사실 종신종열...거100에서 일방 종여섯... 재고날때 전모 중방은...종사중인 물넷을 개미하여...주십일로 동아탑 하단2출원으로 종셋종열....복사...거백에서 전모중방 사실에 일방 종여섯.....'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무슨 급한일이길래 경력운용표도 아니고 일제전화도 아니고 무전으로 각 중대 행정반을 불러서 출동명령을 내릴까 싶더군요... 중대장 무전병이었던 저는 거100 지시대로 퇴근한 중대장 모시러 장차를 출발시키고 당직 소대장께 보고해서 근무나간 대원들에게 뭐든 잡아타고 신속히 귀대하라고 무전을 날렸습니다. 동아대로 가는 차안에서 동아대에 인공기가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군요..이미 밤이 깊어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고 동아대에는 부경총련 출범식으로 대학생 4천5백명 정도가 모여있었습니다. 당시에 대학생 4,5천 정도는 별로 큰상황도 아니라 몇개중대만 출동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아대 도착하자마자 전중대 완전진압복하고 화학탄 있는대로 다 챙기라는 무전이 떨어졌습니다. 하단 2파출소에서 지방청 경비과장, 기동대장, 경비계장, 사하서장, 사하경비과장, 각 중대장들이 회의를 하더니 정문,후문,뒷산(?) 3군데로 전 중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부산에는 진압부대가 22개중대가 있었는데 기동대 1,2,3,5,6,80,90,91 전경대 701,702, 방순대 119부터 229까지 있었지요 당시 119중대는 미문화원 전담중대라 출동을 하지 않았고(방순대인데 시설경비전담이었음) 129중대는 부처님오신날 연등행진 경비하러 나가서 제외하고 총 20개중대가 모였습니다 정문쪽으로 1중대, 80중대가 앞장서고 다른쪽으로는 몇중대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 대략 기동대,전경대가 다 앞장서고 방순대가 뒤를 받치고 들어가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방순대를 139,149,159...이런식으로 건제순 배열을 하다보니 209중대인 우리가 229와 함께 제일 뒤로 배치가됬습니다 219는 우리보다 건제순으로 뒤쪽이지만 동아대 관할중대라 지리에 밝아서 앞쪽으로 배치되었구요 229는 당시 창설된지 3개월밖에 안된 신설중대라 예비대 성격이었고 사실상 우리중대가 제일 꼴찌로 배치된거였습니다 그건 지휘부의 많은 실수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시위진압은 어떤 부대건 많이 해보면 잘하게되어 있습니다. 특히 학내진압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당시 학내진압 분야에선 우리 209가 부산에서는 손꼽히는 전문중대였습니다 별다른 훈련을 받은것도 없지만 워낙 부산대에서 진압을 많이하다보니 그냥 경험이 쌓아서 그리된것이죠 바로 1년전 91년에 부산대 전대협(한총련 전신) 5기 출범식때 5만 시위대(사수대 4천명)가 10시간동안 하루에 화염병 3만개 투척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세울때 정문 진출시도를 저지한 중대중 하나였기도하구요(부산 1,5,209와 대구 1중대가 정문저지조였음) 학내진압은 선두중대를 받쳐주는 후위중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전진하는 선두중대가 임무수행을 할수있도록 잘 버텨주어야 하고 퇴각시 신속히 후퇴해서 선두중대가 고립되지 않고 무사히 빠질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어야하니까요.. 선두던 후위던 자신있었고 제딴에는 자부심이 넘치던 209인데 뒤쪽으로 배열된게 불만이었지만 중대장은 저한테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행이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중대장만 3번째인 우리 대장은 벌써 감잡은 것이죠 덕분(?)에 저는 무전기로 생생한 현장중계와 각중대 무전병들의 다급한 비명소리를 들으며 상황을 관람(?)하게되었습니다.. 동아대 진압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임무는 '인공기 수거' 아주 간단한 작전이죠. 학교안으로 밀고들어가서 인공기만 떼오면 됩니다. 그 임무는 부산에서 최고로 꼽히던 사복80중대(2080)가 맡았습니다. 2080은 89년 동의대 참사 당시 학생들에게 대원이 납치됬던 부대입니다. 이 부대원 5명 구출하러 갔다가 3,6,90중대원 7명이 작전중 순직(사망)했습니다 2080은 91년 봄에 강경대군 사건이후 전경의 시위진압 위헌문제가 불거지자 전경에서 의경으로 대원이 교체된 상태였습니다. 각 방순대에서 기수별로 차출했지요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서 5월9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깜깜했습니다. 너무 어둡다는 불안감에 더불어 동아대 정문에 가보고 깜짝놀랐습니다. 학교가 정문부터 오르막이 가파르고 계단이라서 저항이 거셀경우 밀고올라가는게 아주 힘들게 생겼고 무엇보다도 보병이 돌격하려면 포병이 지원사격하듯이 빗발치는 화염병과 돌세례(밤에는 보이지도 않음)를 뚫고 선봉부대가 저지선을 돌파하려면 다탄두 지원사격이 있어야하는데 이 학교는 다탄두 차량이 사격권내로 진입을 할수가 없는 구조인것입니다.... 선두 중대원들은 깜깜한 밤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꼿는 화염병과 짱돌에 노출된 상태로 기어올라가다시피 하는 상황이 된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공격시작. 선두에 80중대원들이 화염병 세례를 받으며 오르막길을 정신없이 돌격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뒤로 기동대,방순대들이 완전진압복에 방독면을 쓰고 무거운 몸이지만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턴 직접 선두에서 돌격했던 기동80중대 조*현, 김*성 의경 경험담입니다) 기동80중대는 의외로 정문 저지선을 쉽게 돌파했습니다. 밤이라 화염병은 잘보여서 별문제될게 없었지만 돌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80중대는 사복이라서 방패조가 몇명뿐이라 대부분의 대원들은 그냥 과감하게 돌격해들어갔습니다. 의외로 쉽게 운동장까지 진출해서 인공기를 찾았습니다. 너무 어두웠지만 부지런히 찾았는데 찾고 보니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무슨 큰 깃발이라도 있는건줄 알았는데 그냥 손바닥만한 종이에다가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인공기 비스무레 한것을 그려서 만국기 사이사이에 몇장 끼여있는 정도였습니다... 대원 몇명이 만국기를 끌어내려서 몸에 둘둘 감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철수.. 뒤는 다른중대에게 맡기고 80중대는 인공기만 가지고 바로 뒤로 빠지라고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진압복 중대들이 여기저기서 붙고 있었는데 경력이 조금씩 뒤로 빠지자 사수대가 쇠파이프를 들고 진압부대에 전격적인 반격을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상황에서 중대들이 뒤엉키기 시작했고 넘어지고 부닥치고... 뒷걸음치며 후퇴하다가 등을 부딪힌 사람이 있어 돌아보면 쇠파이프든 대학생이기도했습니다. 사수대에 몰리자 대부분 방패가 없는 사복중대원들은 지휘관을 보호하기 위해서 소대장, 부관을 가운데로 밀어넣고 대원들이 둘러싸서 쇠파이프 세례를 몸으로 막아내며.. 엉키고 섞인 아비규환을 겪으면서 학교밖으로 인공기를 수거해냈습니다. 대원들은 방패도없이 99cm 짜리 중봉하나로 쇠파이프에 맞섰으며 봉이 부러지면 맨주먹으로 쇠파이프 사수대와 치고 받으며 퇴각했습니다. 그때 조*현 의경은 쇠파이프에 맞아 오른쪽 팔꿈치뼈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김*성 의경은 한쪽 손이 부서졌습니다. (다시 제가 본 관점) 그때 들어간 중대중에서 1중대와 702전경대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동아대는 3,80,219중대 빼고는 다른중대들은 별로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학내지리를 전혀 모르지요. 야간 학내진입하는데 조명차 한대없고 지도한장 받은게 없었습니다. 80중대가 인공기 수거완료했으니까 퇴각을 해야하는데 .. 생각보다 신속하게 인공기 수거임무를 완료했으나 그게 상황전파가 제대로 안되면서 뒷중대들은 계속 학교안으로 진입하다가 뒤늦게 퇴각하려니 병목현상이 일어나면서 퇴로가 막혀 버렸고 피아식별도 안되는 어둠속에서 중대가 섞여버려 지휘체계가 미바된것이죠 다른방향으로 진압한 부대들도 어둠속에서 집중공격을 받고 방향을 잃고 헤매게된것입니다. 어둠속에서 중대들이 섞이고 집중공격을 받으며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리저리 쫒고 쫒기다가 대원들은 길을 잃고 흩어지고 곳곳에서 포위되어 무장해제되는 대원이 속출했습니다. 무전에서는 자기 중대,소대 위치를 잡고 통제하려는 무전병들이 다급한 외침이 계속 들렸습니다. 완전포위됬다며 도와달라는 비명가까운 무전도 들리더군요 하지만 이미 상황은 통제불능이고 학교안의 중대는 지휘체계가 무너져 각 대원들이 각개전투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포위당해 쩔쩔매는 부대가 보여도 뒤쪽에 대열을 유지하고 있던 중대들이 도와주질 않았습니다. 도와주려고 전진하면 부상자, 실종자가 생길거같으니 중대장들이 그냥 못본체한거죠. 어떤 중대는 1개소대가 사수대에 밀리고 밀리다가 대원들이 아래쪽으로 투신하기도 했습니다. 맨뒤에 있던 우리중대는 80중대가 순식간에 인공기를 수거한데다 앞에섰던 중대들이 우르르 밀려내려오니 동아대에 제대로 들어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차례도 되기전에 중대들이 밀려내려오기 시작했고 사수들이 앞으로 전진해서 SY 지원사격을 해봤지만 도움은 안되고 결국 뒤에서 화염병 날라다니는거 구경만했습니다. 부상자들이 밀려내려오는데 정말 못보겠더군요.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대원들이 수두룩하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터져서 피를 흘리며 부축해서 내려오고... 한 사복대원은 격전중 운동화가 벗겨졌는지 한쪽발이 맨발에...거기 병조각이 수십개박혀서 보도블럭에 피발자국을 찍으며 부축을 받고 내려오더군요 어떤 SY사수는 쇠파이프를 SY총으로 막아냈는지 총신이 확 휘어 있더군요.... 총검술하듯 쇠파이프를 막아내며 개머리판과 탄통쪽으로 돌려찍어가며 빠져나왔답니다 더 내려와서 각 중대 지병은 하단2파로 모여 피해상황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하단2파쪽으로 가는데 다른 방향에서 진입했다가 부상한 대원들이 파출소 근처에서 후송을 기다리며 뒹굴고 있었습니다. 수십명의 대원들이 쓰러져서 신음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제 동기를 발견했습니다. 1중대원이었는데 쌍둥이 형제가 같이 입대해서 저하고 훈련소, 경찰학교 같은 내무반이어서 잘아는 사이었습니다. 원래는 동생하고 같이 사하방순대에 있다가 1중대가 의경으로 교체될 때 1중대로 전출됬지요 달려가서 이름(박재구)을 부르며 어디를 다쳤냐고 물으니 정신이 혼미하여 제대로 답을 못하더군요....정신차리라고 하며 진압복을 벗기고 살펴보니 쇠파이프에 맞아 다리가 부러지고 허리를 심하게 다친 듯 보였습니다.... 부상자들을 실어나를 앰뷸런스는 오지않고 대원들은 고통스러워하고 너무 가슴아팠습니다 눈물이 절로나는데...눈물을 훔치며 파출소 앞으로 갔습니다. 거기보니 경찰대출신으로 보이는 젊은 소대장 한사람과 소대장 방패인듯한 대원이 서있는데 소대장 방패 대원은 머리통이 터져서 얼굴이 피범벅이고 방패는 위아래가 모두 날아가고 가운데 손잡이만 들고있더군요....소대원은 다 없어지고 소대장 방패가 끝까지 소대장만 보호하면서 끌고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근데 갑자기 그 소대장이 갑자기 파출소안으로 화이바를 집어던지더니 그안에 있던 기동대장, 사하서장 등 지휘관에게 욕을 하는겁니다. '야 이 개XX들아! 이게 작전이야!?! 우리 1중대...우리애들 어딧어. 우리애들 살려내!!; 이러면서 막우는겁니다....옆에 있던 우리 차하나도 울고...저도 울었습니다... 단 1시간도 안되는 짧은 작전에 피해는 너무 컸습니다. 각중대 사수들이 2천5백발의 화학탄을 쏘면서 학내로 진입했고 사수대는 2천개의 화염병과 5만개의 돌(당시 정보보고)을 던지며 저항했습니다 뒷걸음질로 좁은통로를 통해 퇴각하는 중대들을 각 출입구까지 쫒아와서 쇠파이프로 매찜질을 가했고 뒤쳐진 수십명의 대원들을 납치했습니다. 그때 시점으로 각중대 부상자 148명, 실종자 46명..(1중대 30명, 702전경대 4명, 3중대, 159중대 등등) 각 중대는 인원파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상자들은 어디로 실려갔는지 알수도없고(아무 차나 지나가는 차 붙잡고 병원좀 데려가달라고 부상자들 막 실었음) 도대체 몇 명이 학생들에게 끌려갔는지 파악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진압장비는 얼마나 피탈, 분실했는지 셀수도 없었고 심지어 무전기가 10여대와 SY총까지 피탈됬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179중대는 중대장이 화염병을 맞은 상황이었고, 90중대는 소대장이 쇠파이프에 매찜질을 당해 양 다리가 모두 부러져서 실려내려왔습니다..... 제가 직접 보진 못했으나 어떤 중대는 부상자를 끌고 내려와서 방독면을 벗기니 눈알이 튀어나와있었다고 합니다. 쇠파이프로 뒤통수를 맞은것이지요. 납치된 대원이 수십명에 이르니 이들을 구출하러 재진입해야한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부상대원과 피탈장비가 많아서 작전수행이 어려운 중대가 여럿이나되고 학교안의 4천5백명 시위대를 제압하기에는 경력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단순 해산이 아니고 완전 제압하고 납치된 대원을 구출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휘부는 불과 3년전 부산동의대에서 있었던 악몽도 떠올렸을것입니다. (납치대원 구출중 부산기동대 7명 사망) 지휘부옆에 계속 얼쩡거리면서 중대장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가까운 경남청에 지원요청을 했다는 소문도 들리더군요 가까운 울산,양산,마산,창원,밀양에 기동대,전경대,방순대가 10여개 있으니 와준다면 도움이 될것같았습니다. 새벽 5시가 되도록 별다른 작전지시가 없어서 대원들은 그냥 길바닥에 누워자고 저는 계속 지시를 기다리는데.... 결국은 사하서 학원반에서 학생들과 협상을 해서 납치된 우리대원과 체포된 사수대 8명과 정문에서 포로교환을 하는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직접 보진못했고 그렇게 들었음) 날이 밝자 상황은 종료됬고 순식간이었던 악몽같았던 밤이 지나갔습니다.. 우리중대는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묵묵히 부대로 돌아갔습니다.... ----------------------------------------------------------------- 전의경그들의 삶에서 의313님... 불과 10년 차이지만, 10년전에는 종이에다 그린 조그만한 인공기때문에 전의경선배님께서 엄청난 고난을 당했죠. 그 후 10년후 아시아게임때 인공기가 부산시내 한가운데에서 펄럭였습니다. 10년은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엄청난 변화죠..^^; ---------------------------------------------------------------------- 네이버에서 의경이라고 치신후 4번째 홈페이지에서 퍼온겁니다. 이글 보고나니 진짜. 우리나라 의경들도 이탈리아나 같은 나라 같이 장거리 호신용 무기를 소지하게 하는게 좋을것 같네요... 총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