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실려가는 군대 트럭에 앉아 지나쳐 가는 길을 쳐다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웬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제발!! 이것이 꿈이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이내 청춘을 트럭에 실어 저 멀리 사라져가는 길만 하염없이 쳐다봅니다.

 

행복 끝 불행시작. 머리하나로 지구를 떠받치는 이 순간.
군대란게 왜? 있어야 하고, 왜? 나는 남자로 태어났을까,

하는 부질 없는 한숨 속에, 그저 몸 건강히 제대 하라던  

어머님 얼굴만 계속 떠오릅니다.                                

 

하루종일 고참들의 장난감이 되어 이리 저리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정말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일찍 입대할 걸 그랬습니다.                            

이 자식들!! 제대하고 어디 사회에서 만나기만 해봐라.                          

소리없이 이를 갈며, 오늘도 나는 장난감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간 리모콘이라고 들어보셨나요?                                                        

TV는 볼 수 없고 병장이 지시 하는데로 번개같이 채널만 바꿔야 했던          

인간 리모콘.                                                                                     

국방부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는데,                                         

이리도, 시간은 더디기만 한 것 일까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것만 같습니다.                      

 

 

 

 

 

야간초소근무. 적군보다 더 무서운 건 뒤에서 나를 감시하는 고참입니다.       

피곤하고 졸려서 쓰러질 것만 같고, 총을 든 팔이 시리고 저려서                   

미쳐 버릴 것만 같지만, 적군이 아니라 고참이 무서워서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자대배치 받고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습니다.                                       

정말 시간이 흐르고 있기는 한건가요                                                  
고향에 두고 온 친구들이 내 생각은 하고 있을까요?                               
외로움을 느낄 시간조차 허락되지않는 졸병이라                                   

시간이 아예 멈춰버린 느낌입니다.                                                     

 

아아~! 드디어 누군가 저에게 면회를 왔습니다.
그녀일까요? 아니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일까요?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오는 날 먹구름 뒤에서 빛나고 있는 태양처럼...
항상 우리를 비추고 있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잠시 잊어버리고 있을 뿐 이었습니다.
 
면회실로 달려가는 지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행복인가 봅니다.

 

 군대추억

 

사회에선 양말 한 번 빨아본 적이 없었는데...

고참들 빨래까지도 모두 빨아야 했던...
진흙물로 얼룩진 전투복에 비누칠을 하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 핑 도는 눈물을

참아야 했었던 그때 그 시절이.....

 

 

사회에선 음식투정만 할 줄 알았었는데...

추운 겨울, 꽁꽁 언 손을 비벼가며 설거지를 했었던...
세정제 하나 없이 오직 수세미 하나로

식기를 깨끗이 닦아야만 했었던 그때 그 시절이...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 거지같은 옷들이

다 마를 때 까지 지키고 있어야 했던....
뜨거운 태양 볕에 땀을 쏟아내며,

빨래보다 내 몸이 먼저 타버릴 것만 같았던 그때 그 시절이...

 

해가 지던 연병장에 앉아 구두약을 찍어 전투화가

유리가 되도록 번쩍 번쩍 광을 내야 했었던...

힘겹게 닦아 놓으면, 고참이 와서 발로 짖이겨 버렸었던..
손톱 밑에 낀 시커먼 때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때 그 시절이...

 

야간근무 갔다 와서 모두가 잠들어있는 한밤 중.
고물다리미를 힘껏 눌러가며 전투복을 칼같이 다려야만 했었던...
뒤에서 지켜보는 고참의 매서운 눈초리가 다리미보다도

더 뜨겁게 느껴지던 그 끔찍했던 시절이...

 

새벽녘에 눈을 좀 붙여보려고 모포속에 기어들어가

벌벌 떨다가 겨우 겨우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야속한 기상나팔이 흘러 나오며

또 다시 지옥 같은 하루가 시작되던.....
정말 죽고만 싶은 생각에 이불 속에서 울먹이던 그때 그 시절이..

 

그렇게 군대라는 삶에 힘겨워 하다 어머니께서 보내신 편지 한 통에

그만 감정이 복받쳐 올라 이를 악물고 참았던 눈물을

종내엔 바보같이 흘리고야 말았던 그때 그 시절을...
 
혹시 아주 영영 잊지는 않으셨나요?
지금도 눈만 감으면 아련하게 펼쳐지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을...

 

 짬 밥

 

고된 훈련 뒤 땅바닥에 앉아서 먹는 짬밥 맛이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토록 땀을 흘렸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건더기 없는 된장국, 푸석 푸석한 짬밥에 깍두기 두어개가
이토록 꿀 맛 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 차례가 언제나 올런지 조바심이 나서 미칠 것 같습니다.
혹 반찬이 다 떨어지지는 않을는지, 혹 국이 모자라지는 않을는지...
가슴이 두근거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식사시간 기다리는게 이토록 지루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식사를 하는데 짬밥이 줄어 드는게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배가 고픈 군바리인지라
밥알하나, 깍두기 한 개라도 더 먹어 보려고 안간힘을 써봅니다.
쌀 한톨이 이렇게 소중한 것을 예전엔 왜 몰랐을까요?

 

먹을 것 걱정이 없는 식당의 짬돌이 녀석이 제일 부럽습니다.
아랫배가 나와도 좋습니다. 배탈이 나도 좋습니다.
비참하게 보여도 좋습니다.
정말 배가 터질 때 까지 실컷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아~! 이 얼큰한 국물 맛!
야간근무 중에 먹는 컵라면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당장 내일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하답니다.
라면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투정을 할 상상조차 못했을 텐데 말이죠.

 

벌컥~ 벌컥
야외훈련 중에 마시는 물 한모금은 군인의 생명수입니다.
수통을 탈탈 털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마셔댑니다.
단언컨대

수통에서 '수'자는 물수(水)가 아니라 목숨 수(壽)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초코파이와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층으로 쌓은 초코파이에 초를 세워 불을 밝히고 벌이는 생일파티!
군대란 곳은 잊고 사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일깨워 주는 곳일까요?
초코파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 황홀한 행복감을 느낄 줄은
예전엔 정말, 정말 몰랐답니다.

 

 첫휴가

 

드디어 내일이 입대하고 첫 휴가랍니다.
가슴이 벅차올라 터질 것만 같습니다.

이 날을 그 얼마나 기다려왔던가요.

입고 나갈 군복을 다리는 이 시간이 너무 너무 행복합니다.
칼같이 다린 이 전투복으로 그녀의 굳어진 마음을 싹뚝 베어 버릴 겁니다.

 

깍새에게 잘 부탁한다고 담배 한갑을 쥐어주긴 했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그녀와의 멋진 만남은 전적으로 깍새에게 달려있습니다.

엄청난 임무를 띤 깍새의 손이 살포시 떨립니다.

 

군대냄새를 말끔히 씻어버려야 합니다.
한겨울 찬물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검게 탄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씻고, 씻고 또 씻고..
지긋지긋한 군대와 징그러운 고참들을 벗어나
잠시 동안 모두 안녕입니다.

 

짖궂은 고참들이 왜 한군데만 집중적으로 깨끗이 씻냐고 놀려댑니다.
오늘만큼은 고참들의 갈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야간근무도 힘들지 않습니다. 추위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내일은 입대하고 처음으로 자유를 얻게되는 휴가랍니다.

 

 

  

오늘밤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잠들지도 않았는데, 꿈을 꾸는 기분입니다.
너무 너무 행복해서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어서 어서 이 밤이 흘러 가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

휴가가 번개같이 흘러가고 군대로 복귀하는 이 순간
다시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더 싫어 몸서리가 처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잠 한시간 덜 자고 그녀 얼굴 한번 더 보고 오는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잠 한 시간 덜 자고 맛난 것 많이 좀 먹는 건데...
아~! 이것이 악몽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탈영하는 녀석들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긴 한숨과 같이 새어나오는 이 담배연기처럼

나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군대축구

 

일요일 아침.

정말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잠만 잤으면 좋겠는데…
간부는 여지없이 축구집합을 시킨다.
월드컵대표선수도 경기를 하고 나면

체력회복을 위해 며칠을 쉬어야 한다는데...
군인은 터미네이터라도 된단 말인가.
왜 허구, 헌날 축구 아니면 족구냔 말이다.

 

이등병이 일병이 몰고 오는 공을 막아내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일병이 상병에게 패스하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병장의 핸들링을 보고 상병이 반칙이라고 항의했다가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세상에 이런 규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건 FIFA측에 알려야하는데...

차라리 무승부로 끝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