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고참병 하나가 대기 중인 신병 앞에 나타났다. 신병 두 명을 차출하러 온 것이다. 그 두 명 중 하나로 내가 차출되었다. 차출내용은 전방에 LMG(Light Machine Gun 경기관총 輕機關銃)를 운반하는 임무였다. 인솔자의 뒤를 따라 LMG를 짊어지고 고지에 오르는데 날씨가 무더워 몹시 힘이 들었다. 목적지인 고지에 올라 운반한 LMG를 내려놓고 땀을 닦다보니, 이 능선 위에서 저 멀리 군위읍으로 가는 길이 보였다. 피난 올 때 지나온 길,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고향생각에 깊이 잠겨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빨리 내려오지 못해!”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에 정신이 들어 부리나케 아래편으로 내려왔다. 높은 곳에 서 있는 나는 좋은 표적지였다. 입대 하루 만에 전투 위험 지대에서 적군의 저격병에게 희생당할 뻔했다. 이렇게 신병인 나는 멍청한 소년병이었다. 배치되어 있는 장병들은 모두가 군복에 풀을 꽂아 위장을 하고 있었다. 전방 적 진지로 보이는 고지에는 포탄이 작렬하며 연막이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군인의 기본적인 업무와 행동방식, 병영상식 등 기초 군사 지식이 전혀 없으니 매사에 놀라고 겁부터 앞섰다. 다시 인솔자의 뒤를 따라 하산하는데 도중에 밑에서 고지로 올라오는 군인 행렬이 있었다. 한 병사가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무섭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 인민군 포로구나!”그 병사는 내 멱살을 잡으며 죽여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를 인솔하던 고참병이 “야야 신병이야!”라며 말리자 “신병이야? 신병이 뭐 이래”라고 하며 나를 놓아주었다. 짧은 까까머리에 학생 모자와 너덜너덜 맞지 않는 군복 차림의 나를 보고 인민군 포로를 잡아 데려간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이들을 지나보내고 한참을 가다가, 인솔자는 날씨가 너무 더우니 저수지에서 목욕을 하고 가자고 했다. 잠시 더위가 가셨다. 해 질 무렵에야 우리는 CP에 도착하였다.
 
 어제 사격에서 충격을 받은 왼쪽 귀가 아파서 괴로웠다. 밤이 되니 머리 반쪽까지 더 아파져서 상급자에게 귀가 아파서 못 견디겠다고 하였다. “이 새끼 전장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귀 아픈 것 가지고 야단이야!”하고 핀잔을 받았다. 위생병에게 치료를 해달라고 하였으나 그는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만 하였다. 통증은 가라않지 않았고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때 위생병이란 병과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이때까지 군대에 입대해 생활하며 보니, 모두들 사람을 지칭을 할 때, 다른 병사를 통칭하여 ‘이 새끼 저 새끼’ 하는데 내 귀에는 곱게 들리지 않았다.

고지에서 수시로 사상자가 후송되어 오는데 그 모습을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전사자의 처참한 몰골과 부상자들의 상처, 또한 신체 일부를 잃은 아픔을 이기지 못해 위생병을 부르는 처절한 울부짖음. 마치 모두 내가 직접 겪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직까지 성숙되지 못한 그때의 나로서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밤에는 불침번을 서라고 하였다. 나이가 어린 나는 불침번이라는 말도 생소하고 어떤 내용의 임무인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모두 자고 있을 때 깨어 주변을 살피는 보초였다. 교대로 불침번을 서는데, 고지에서는 전투가 계속되어 산발적으로 포탄이 종종 날아다녔다.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와 폭발하는 소리는 소름이 끼치고 사람의 피를 말리게 했다. 어느 날은 저녁 취사 준비를 하는데 적의 야포공격이 기습적으로 시작되었다. 고참병이 눈과 귀를 막고 낮은 곳에 엎드리라고 해 큰 바위 밑에 엎드렸다. 포탄이 쏟아지고 그 후폭풍으로 매캐한 화약연기와 자욱한 분진을 뒤집어쓰면서 엎드려 있었는데, 슬쩍 주변을 살피니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아마도 적군이 우리 본부 위치를 알고 야포공격을 하는 것 같다고 고참병들이 이야기하였다. 약 1시간쯤이 지나자 포격이 중단되었고, 저녁밥을 마저 지을 수 있었다.


 이때 함께 입대한 신병 동기 중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근 전선에서 신병은 소지한 M-1 소총의 실탄을 전부 사격하여 소모하고는, 탄창을 교체하고 탄약을 장전 할 줄 몰라 분대장만 찾아다녔다고 했다. 총을 모두 다 쏘았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빈 총기의 탄창을 교체하지 못하는, 이토록 무지한 군인이 어찌 자기 생명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과 요령을 알았겠는가?
 그들은 입대하고도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했다. 이런 무지와 미숙함에 의해서 귀한 생명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어갔다고 생각된다. 고급 지휘관들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병사에게 전장에서 적과 싸울 수 있는 방법과 요령을 가르쳐 주어야할 책임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마땅한 군의 인사 원칙이 아니겠는가? 병력의 질은 상관없이 숫자로만 채워 총알받이로 일선에 배치함은, 사람의 생명을 너무 경시하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밤엔 고참병들이 적의 총공격이 예상된다고 하였다. 나와 같은 신병들은 비무장으로 전원 전투 배치되었는데, 그곳은 목화밭이었다. 산발적으로 여기저기 적 포탄과 유탄이 날아오는 소리와 폭발하는 폭음은 몹시도 소름끼쳤다. 밤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갑자기 적군이 앞에 와서 나를 죽일 것 같은 공포심에 가슴을 졸였다. 목화밭 작물 사이에서 손으로 더듬어 목화 열매를 따서 먹으며 공포심을 달래었다. 왜 그리도 모기는 많은지... 한참을 겁에 질려 공포에 떨다가 괴로운 밤이 가고 아침이 되자 ‘또 하루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시간이 흘러 입대한지도 어느덧 1주차 정도 되어 갈 무렵이었다. 우리 부대는 이동 명령으로 후방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후방의 산모퉁이에 오니 많은 수송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인 일선에서 잠시나마 물러나오니 우선 살았다는 안도감에 위안이 되었다. 차량 행군을 하는데 도로 좌우에는 여전히 피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내가 처음 와보는 도시, 대구였다. 우리 부대는 대구의 계성 고등학교 교정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