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트(독일어: U-boot 우보트[*])는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해군이 운용한 잠수함으로 유명해졌으며, 바다 밑의 선박을 뜻하는 “Unterseeboot”란 독일어의 약자이다. 19세기 중반에 독일 제국 해군이 개발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기술 문제로 인하여, 잠수함대 사령관이었던 칼 되니츠 제독이 그의 회고록에서 얘기했듯이 “필요한 때에 잠수할 수 있는 배”(가잠함)이란 말이 더 어울렸다. 그렇지만 유보트로 인한 연합군의 피해는 막대했다. 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호송 선단 공격에 투입되었다. 물론 대서양 호송 선단 전투에서 유보트의 피해도 컸으며, 당시 독일 해군이 사용 가능했던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전력이 유보트 함대였다.

2차 세계대전 때 대표적인 U-Boat 7형을 보면 800t이며 속도 12노트,수중 4노트,어뢰발사관 전방 4기 후방 1기(어뢰는 14기 탑재)였다. 그 중에 VII C형은 균형 잡힌 성능으로가장 많이 생산되었고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U-Boat

독일은 1919년 ‘베르사유조약’으로 잠수함의 건조가 금지되었으나 나치스의 재군비에 따라서 건조를 재개하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1,158척을 건조하여, 연합군의 군함 ·상선 5,150척(총톤수 2157만 726t)을 격침시켰다. 이중에는 전함 ·항공모함 ·구축함도 포함된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200∼300t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1,000t 이상의 것도 출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주력이었던 U7형은 수상배수량 790t, 속력 17kn, 항속거리 1만 2000km이며, 어뢰발사관 5기를 장비하고 있었다. 1940년 6월 ~ 1943년 5월까지 최고의 전성기였던 시절에는, 연합군 수송전단을 발견하면 단독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근해에 있는 U-Boat 잠수함에게 연락을 해서 3척~15척이 집단으로 공격한다. 외각에서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잠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서 중앙에서 연합군 수상함을 공격했다.

U-Boat 잠수함 에이스 : 퀸터 프린 (U-47,30척 격침) 요아힘 쉐프케 (U-100,97척) 오토 크레치머(U-99,46척)

연합군 수송 선단의 최고 사령관 : 도널드 매킨타이어 (7척 U-Boat 잠수함 격침)

참고 설명:연합군 수송선단은 잠수함이 부상하면 탐지 할 수 있는 신형 대수상레이더 탑재

결국 기간 중 753척의 U-보트가 침몰당했고(해상에서 적의 공격 및 기타 원인으로 630척, 항구 내에서 기뢰 및 기타 원인으로 123척) 이와는 별도로 전쟁 끝 무렵 해외기지 철수 시 그들 승조원에 의해 자침 또는 폭파 215척, 그리고 종전 시 영국 또는 연합군 측에 빼앗긴 U-보트도 무려 153척에 달했다.

 

 

 

 

 

 

 

 

 

 

 

미 해군 함정이 상선을 보호하는 장면

U 보트가 해수면 위로 부상한 장면

 

 

미 해군 구축함이 공격하는 장면

                  U보트 내부 모습

 

 

 

 

 

 

 

 

 

 

 

 

 

 

 

 

 

 

 

 

 

 

 

종전 직전 미 본토에 대한 자살 공격을 강행한 U-576승조원들

 

 

U보트 공격에 침몰한 영국 함정

바다에 가라앉아있는 모습

2차 대전 당시 소련으로 미국의 군수물자를 실고가던 상선의 인양모습

원조품인 셔먼 탱크를 인양하는 장면

미국에 지불할 약 2,500억워의 은괴를 실고가다 침몰한 만토라호

바다속에 누워있는 만토라호

인도네시아 해저에서 발견된 침몰된 U 보트

영국 해안으로 밀려온U보트

 

 

미국 매샤츄세스 근해 해저에서 발견된 침몰된 U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