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기억력이 좋다고 '자칭'하는 몸으로써 1997년 10월에 퇴소식을 떠올려 봅니다.



1997년 입대 군번까지만 퇴소식때 면회가 허용이 되었고, 이후엔 사라졌었습니다.


퇴소식 전야제(?)인 날에는 다른 훈련 일절없이 하루 죙일 퇴소식 예행 연습만을 했습니다. 미리 마련된 연병장에 인조잔디의 표식(?) 이런거에 각자 딱 맞게끔 정열하면 됨. 그 어느때 보다도 지독하게 굴리더라구요.

목이 쉰 상태로 목청이 터져라 구호와 군가와 함성을 부르고 외쳐보지만 나오질 않는데 GR GR하는 교관과 조교들.

암튼 그날을 끝으로 민무늬 CS침투복(일명 쓰레기복)은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개전투 이후로 가장 힘겨웠던 하루였었습니다. 아니아니 그날이 진짜 가장 힘겨웠었습니다.

 

그래도 내일(퇴소식과 면회)이 있기에 그 희망을 듬뿍 담은체 소대원들은 그저 희희낙락. 저녁엔 조교에게 이등병 계급장을 받았고 빵모자에 바느질을 하는데 정말 만감이 교차하더라구요.

내일 부모님 앞에서 멋지게 보여야 하는데 다들 목이 쉬어 어쩔까나 했는데 어떤 녀석이 그러더라구요, "퇴소식때 연병장에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면 피가 토할 정도로 목청이 커질 수 밖에 없다"라며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그날 잠이 들었는지 못들었는지도 모른체 날이 밝아 맞이하게된 퇴소식!


교관들은 절대로 연병장 쪽을 바라보질 말라고 하시더군요. 또한 '계급장 수여식'때 달려오실 가족 지인들의 눈물에 동요치 말라고 그랬다간 니들의 면회시간만 단축이 된다라고,.. 경고까지


신교대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짬밥이었던 그날 아침을 먹으러 나가는 집합과 함께 괜시리 설레여질 수 밖에 없더군요. 눈깔 돌리지 말라고 조교는 계속 말하지만 이동간에 눈알은 연병장을 보게되고 많지는 않았지만 면회오신 분들이 보이니 저절로 어깨에 힘이 나더군요. 아침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도 힐끔힐끔 다들 연병장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고, 제법 아침밥 먹기전 보단 다른 면회인 규모를 보며 마냥 즐겁더라구요.



진짜로 시작된 퇴소식. 매일 입었던 쓰레기복이 아닌 그냥 군복과 하얀 수갑을 낀체 K-2 소총을 갖추고 앞에 총 자세로 출정! 연병장까지 분열하는 과정에 군가로 '전선을 간다'를 진짜 다들 있는 힘껏 목터라~ 불렀습니다.



사열대에 오신 면회인들을 보니까 괜시리 내 자신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켠에선 그동안에 고단함이 마음속으로 밀려 오며 동시에 저절로 녹아지게 되더군요. 그렇게 면회인들은 점차 들어서는데 눈알을 좌우로 아무리 굴려봐도 보이질 않는 내 가족.

 

하이라이트인 '계급장 수여식'이 시작 되었고, 면회인들에겐 훈병들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수 있도록 좌석 배치표던가 암튼 그것을 놔눠 줬었기에 가족&친지&지인들은 찾아서들 가십니다.

내 주머니에서 꺼내어 하얀 수갑위에 내어놓은 이등병 계급장. 팔의 각도를 직각으로 유지해야하는 내 손이 좀 뻘쭘할 촬라에 앞에 아버님께서, "부모님이 안오셨나? 혹시 그렇다면 내가 대신 해줘도 되겠나"라고 하실때, 진짜 환장하는줄 알았습니다.


즉답으로 "아닙니다. 부모님은 현재 저를 못찾고 계시거나 오고 계시는 중이실껍니다"라고 회피를 했었지요. 진짜 왜 계급장 수여식 때문에 면회 시간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지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아실꺼에요. 아주 살짝 시간이 흘러 입대전에 알바로 일했었던 회사에 대표님이 오셨더라구요. 그리고 그분에게 받았던 계급장 수여식. 또 살짝 시간이 흐르니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오셨네요. 후~


그렇게 계급장 수여식이 끝난 이후 눈알을 좌우로 좀 굴려가며 보니까 어머님과 작은누나와 매형 그리고 내 애인이 보이고 방금전에 봤었던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보이더라구요. 퇴소식이 끝난 이후엔 오후 3시까지 면회가 허락 되었지요. 황송하게도 거의 분대단위에 가깝게 오셔주셔서 살짝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엔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삼겹살이었는데 그 자리에선 왜 목으로 넘어가질 않던지...


진짜 그 퇴소식때 면회 시간은 정말 총알처럼 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