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운전하던 대리기사가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두고 떠난 경우 술 취한 운전자가 잠시 운전을 했다면 죄가 될까요?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보도에 화강윤 기자입니다.

<기자>

재작년 11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하던 44살 송 모 씨는 어떤 길로 갈지를 놓고 기사와 다툼이 생겼습니다.

화가 난 대리기사는 급기야 성남시 분당구의 한 사거리 앞에서 차를 멈춰 세웠습니다.

송 씨는 기사에게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기사는 오히려 "손님이 차 키를 빼앗아 도로 가운데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고는 차에서 내렸습니다.

송 씨는 어쩔 수 없이 10m 떨어진 길가로 스스로 차를 옮겼고, 이를 본 기사는 "음주 운전까지 했다"며 재차 신고했습니다.

송 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059%의 상태로 운전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50만 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송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차가 멈춘 곳은 사거리 직전이라 계속 정차해 있으면 사고 위험이 높았고,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차를 이동시켰을 뿐 더 운전할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봤습니다.

법원은 송 씨가 음주 운전을 했을 때 침해되는 법익보다, 사고를 예방함으로써 보호할 수 있는 생명과 신체의 법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긴급피난행위'의 엄격한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무죄가 인정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영상편집 : 최진화)

화강윤 기자hwaky@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