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버스사고의 공포, 이래서 진실이 중요하다

사망한 운전자에게 책임 미루면 안 돼.... 시민 납득 가능한 결과 내놔야

14.03.31 13:53l최종 업데이트 14.03.31 14:08l

 

지난 16일 일요일 서울 송파 버스사고 운전사 염아무개씨(60)는 광화문에서 열린 제85회 동아마라톤 대회 겸 2014 서울국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평소 달리기를 즐긴 염씨는 이 대회에서 4시간 35분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합니다.

염씨의 기록에 대해 강남마라톤클럽 위호선 회장은 "마라톤 동호인 기록으로 보면 아주 빠른 편은 아니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상당히 우수한 성적이다"라며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봤을 때 체력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로부터 3일 후 염씨는 평소대로 아침 일찍 서울 강동구공영차고지로 출근합니다. 발표에 따르면 염씨는 오전 5시 36분부터 오후 3시 10분까지 약 9시간 동안 차고지에서 서대문역을 오가는 370번 버스를 운전합니다. 그리고 약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퇴근을 준비하던 중 "모친의 수술로 병간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신 근무를 해달라"는 동료 A씨의 부탁을 받고 3318번의 운전대를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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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버스 2차 추돌 사고 지점
ⓒ 윤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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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염씨는 3318번을 운전했나?

예정대로라면 염씨는 자신의 근무를 모두 소화했기 때문에 퇴근을 해야 합니다. 서울시가 정한 규정에도 보면 사고 방지를 위해 한 운전자는 최대 9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염씨는 동료의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버스를 운행해 온 기사들과의 인터뷰 결과, 실제 이처럼 업체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동료끼리 업무를 대신하는 일은 관습처럼 존재한다고 합니다. 버스 운행의 특성상 개인사정이 생겼을 때 근무를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가까운 동료끼리 대신 운행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원칙대로라면 회사 측에 이런 사실을 알려야 했습니다. 보고하지 않고 대리로 근무를 한 것은 염씨와 동료가 규정을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한 버스기사는 "나라도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대신 운행해 달라는 동료의 부탁을 거절하긴 힘들었을 것이다"라며 "종일 운전하는 것이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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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버스 1차 추돌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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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달, 석촌호수 사거리 1차 추돌

염씨는 부탁을 받고 오후 3시 38분부터 3318번 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합니다. 염씨가 운전한 3318번 버스는 '현대뉴슈퍼에어로시티 초저상SE'로 최신 기종에 속하며 강동구 차고지를 출발해 잠실역을 경유하고 5호선 마천역 인근 파크데일아파트 정류소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코스로 운행됩니다.

경찰에 따르면 염씨는 오후 9시 50분께 마지막 운행을 위해 차고지를 출발합니다. 이때만 해도 무려 16시간 동안 운전을 한 것이기 때문에 마라톤을 하며 건강했던 염씨라도 피로가 몰려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경찰이 버스 내 설치된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인한 결과, 염씨는 1차 사고 전까지 총 27회 정도의 졸음과 관련된 행동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실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공개한 영상을 보면 염씨가 운전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거나 졸음을 깨기 위해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1차 추돌 사고가 난 곳은 석촌호수 사거리로, 담당 버스기사에 따르면 평소 사고발생 지점에서는 운행량이 많아 주로 중앙차선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차량이 많지 않은 늦은 시간에는 사고 직전 정류장을 지난 후 바로 바깥쪽 차선으로 옮겨 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기자가 직접 3318번을 탑승해 오후 3시께부터 1차 사고 장소를 두 차례 지나갔지만 밀린 차량 때문에 중앙차선을 이용했습니다.

택시 3대를 들이받은 1차 추돌 사고는 정황상 염씨의 피로와 졸음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추측 가능합니다. 29일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 송파경찰서는 브리핑에서 "블랙박스 영상과 디지털 운행기록계 정보를 복원한 결과, 1차 사고 원인은 숨진 운전기사 염씨의 졸음운전이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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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버스 2차 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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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전개, 1차 추돌→ 송파구청 사거리 2차 추돌

단순히 택시를 들이받고 버스가 멈췄다면 지금처럼 송파 버스사고가 이슈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1차 추돌 후 버스는 갑자기 맹렬한 속도로 질주를 시작합니다.

버스는 석촌호수 사거리를 지나면서 약 20초 만에 속도를 23㎞/h에서 70㎞/h까지 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영상 안에 담긴 염씨의 모습을 보면 버스 운전대를 꽉 잡고 지그재그로 틀면서 제어하기 위해 온갖 힘을 쏟습니다.

하지만 석촌호수를 지나고도 속도가 줄지 않자 염씨는 오른쪽에 공사 중인 롯데월드타워를 끼고 우회전을 합니다. 정상대로라면 이 버스는 직진을 하는 것이 맞지만 앞에 정차해 있는 차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엄청난 속력에도 염씨는 우회전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 버스는 송파구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30-1번 버스와 2차 추돌을 일으킵니다. 이 사고로 운전자 염씨를 포함한 3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1차 사고 후 2차 사고까지의 확실한 상황과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증거나 단서가 아직까지 없다는 사실입니다. 속도가 갑작스럽게 증가한 것이 운전자 염씨의 단순 과실인지 차량결함인지는 다양한 추측만 오갈 뿐입니다.



[추측1] 운전자 염씨의 단순 과실?

운행기록과 영상을 보면 운전자 염씨가 상당히 피로했던 것은 추측됩니다. 하지만 1차 추돌 이후 염씨는 1km가 넘는 거리를 어떻게든 제어하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측 백미러를 살피고 상체를 심하게 흔드는 염씨의 모습을 보고도 2차 추돌의 원인이 단순히 졸음 때문이라고 판정내리는 것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결정적으로 영상을 보면 버스는 석촌호수를 지나 다음 사거리를 지날 무렵 바깥 쪽에서 중앙차선으로 급격한 차선 변경을 시도합니다. 다른 차선에는 많은 차들이 신호를 대기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잠실역 사거리에서 역시 추돌을 피하기 위해 정상적인 운행 코스로 직진을 하지 않고 급하게 우회전을 합니다.

현재 다양한 커뮤니티에는 이 모든 것들이 추돌을 피하기 위해 염씨가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썼다고 보는 의견들이 계속해 올라오고 있습니다. 특히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 입수한 다른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서는 우회전 한 사고버스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는 부분이 확인되어 의혹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많은 누리꾼들이 분노하는 것도 이러한 과정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2차 추돌까지 염씨의 졸음운전이 원인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현 흐름 때문입니다.

물론 30년 넘게 버스운전을 해 온 베테랑 기사의 말처럼 염씨가 1차 사고 후 당황하여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생각하여 밟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사는 "사람이 당황하게 되면 아무리 오랫동안 운전을 했어도 납득되지 않는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다"며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추측2] 차량 결함?

염씨가 당황하여 가속페달을 꽉 밟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가 '차량 결함'입니다. 1차 추돌에 인한 충격으로 브레이크 고장이나 이슈가 되고 있는 '급발진'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차량 1차 감정조사에서 브레이크 장치에 결함이 없다고 밟혀졌기 때문에 무게는 급발진으로 기울게 됩니다. 급발진이 아직까지 정확히 조사된 바 없고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잘 언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급발진 의심사고들이 최근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관련 전문가들이 급발진의 주된 원인으로 꼽는 것은 차량에서 컴퓨터 역할을 하는 엔진제어장치(ECU)의 오류입니다. 얼마 전 KBS <뉴스토크>에서는 급발진 사고와 ECU 오작동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 적이 있습니다.

해당 방송에서는 급발진이 의심되는 차량의 충돌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차량의 ECU를 확보해 X-ray 등 정밀 검사를 진행한 결과, ECU 내부 코일 콘덴서 부분에서 이상을 발견했고 이것이 ECU 오작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이 밖에 KBS1 <시사기획 창>에서도 급발진에 대해 적나라하게 다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련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ECU 결함과 급발진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보도된 내용들을 놓고 보면 1차 추돌 후 사고 버스의 ECU에 결함이 생겨 갑작스럽게 가속이 붙고 염씨는 2차 추돌까지 이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추측이 가능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염씨는 알려진 것처럼 졸음운전이 아닌 승객들의 생명을 위해 추돌을 피하고자 목숨 건 사투를 벌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실은 어디에?

사실 현재까지 알려진 영상과 정황만을 놓고 송파 버스사고의 2차 추돌 원인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확실히 밝히기란 어렵습니다. 운전자의 과실도 차량 결함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추측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따라서 현재 많은 국민은 관련 기관이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혀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보다 이미 염씨가 사망했다고 하여, 모든 사고의 원인을 그에게 돌리는 건 아닌가 우려됩니다.

오랫동안 급발진을 연구한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 또한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가장 우려했습니다.

김 교수는 "아직까지 2차 사고 원인을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고 차량을 정밀하게 살피고 다양한 증거들을 수집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명백한 근거와 분석을 하지 않고 섣불리 결과를 발표한다면 추후에도 계속 이 사건은 논란의 소지로 남을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한 가지 눈 여겨 볼 것은, 지난 21일 발생한 인천 버스 연쇄 추돌 사고 역시 이번 송파 버스와 같은 저상버스 기종이라는 점입니다. 저상버스는 자동변속장치를 장착하고 전자제어방식으로 운행되는 버스로 앞으로 전체 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늘어날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이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